잊음의 행복, 앎의 행복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으면 주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지, 혹은 배가 고픈지, 추운지, 더운지도 모른 채 몇 시간을 진행되는 책의 내용에 빠져 있는다. 흔히 이러한 상태를 두고 ‘무아경’에 빠졌다고 표현한다.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오직 대상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직 대상만이 존재하는 깊은 집중의 상태에서는 몸의 느낌이나 상태, 시간의 흐름 등이 인지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느낌이나 감정, 생각도 없고 오직 대상의 내용 따라 반응할 뿐이다.
우리는 평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만 생각이나 감정, 느낌들이 일어나 우리를 괴롭게 한다. 누가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니고 우리가 그렇게 원한 것도 아니다. 단지 금단현상처럼 기억과 습관, 주위 조건에 의해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진 것뿐이다. 우리는 주로 재미있거나 즐거운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므로 몰입의 상태는 지극히 고통스런 상태 이외에는 대부분 특별한 생각이 없는 만족스런 상태이다. 그래서 몰입의 상태는 자신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행복한 상태라고 표현한다. 몰입의 상태는 자신과 현재 상태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몰아(沒我)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몰아의 상태와 혼동하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무아(無我)의 상태’라는 표현이 있다. 무아는 자신을 잊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어떤 존재의 고유한 실체가 따로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가 손뼉을 치면 분명히 손뼉 소리가 난다. 소리가 나기 때문에 손뼉 소리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손뼉 소리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 말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칠 때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냥 존재한다고 하면 손뼉을 치지 않아도 존재해야 할 것이고 없다고 하면 쳐도 있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두 손이 만나 조건적으로 또 일시적으로 존재할 뿐 본래 그 실체가 따로 없는 것을 무아(無我)라고 한다. 그래서 ‘무아의 상태’라고 말할 때는 엄밀히 자신과 어떤 대상이 영원하지 않고 조건적으로 일시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대상을 통찰하여 무아의 상태를 잘 이해하고 있으면 그 대상에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분별심이 현재나 미래 자신을 괴롭게 하는 주원인이 되는데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은 근본적으로 괴롭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아의 상태는 자신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한다.
몰아의 상태는 주로 하나에 대상에 마음을 유익하게 집중하는 삼매수행을 통해 체험된다. 그리고 무아의 상태는 대상을 깊이 꿰둟어 보고 그 성품이 무상하고 실체가 없음을 아는 통찰 수행(반야 바라밀)을 통해 체험된다. 짧게 말해 몰아는 잊음의 행복이고 무아는 앎의 행복이다. 괴롭지 않고 지혜롭게 살기를 바란다면 아마도 이 두 가지의 행복이 꼭 필요할 것이다.
초의차명상 www.teanm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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