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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 > 산중한담 > 지장스님의 차 한잔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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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4-05 11:42
 조회 : 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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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이 내 재산이다
삶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겉으로 드러나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내면에 꼭꼭 숨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있다. 전자를 흔히 업적이라 부르고 후자를 업(카르마)이라고 부른다. 업적은 보통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하며 또 삶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때론 그 업적과 자신을 동일시 한다. 업적은 말 그대로 쌓아놓은 노력과 행위의 결과다. 업적이라 하면 흔히 의미를 가지는 거창한 어떤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의 사소한 행위나 활동도 어떤 면에서는 업적을 남긴다고 할 수 있다.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업적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고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 또한 업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삶의 흔적은 업적 만이 남는 것은 아니다. 업적이 외부에 남아있는 흔적이라면 개인의 내면에는 정신적 흔적 즉 업(카르마)이라는 흔적이 남게 된다.
“중생들은 자신의 업을 소유하는 자이고, 그 업을 상속하는 자이며, 그 업을 모태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친지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의지처로 하는 자이다. 업이 중생들을 차별하여 천하고 귀한 상태가 된다.” - 맛지마 니까야, 업에 대한 작은 분석의 경
업적이라는 것을 만들어 가다보면 업이라고 부르는 내면의 습관이 형성된다. 그 내면의 습관에 따라 인격과 마음의 상태가 규정된다. 우리는 밖으로 드러나는 업적에만 신경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우리의 인생을 반추해보면 결국 우리 자신에게 남아있게 되는 것은 업적이 아니라 업이다. 내면적 습관 즉 업은 집착, 분노, 무지의 힘이 강해졌는지 약해졌는지에 따라 선업, 악업으로 구분된다. 결과적으로 집착, 분노, 무지가 강해졌다면 악업이 되고 그 반대라면 선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업이라고 하는 것은 업적의 내용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업적, 많은 업적을 남겼더라도 나쁜 업을 지을 수 있고 반대로 별다른 업적이 없더라도 좋은 업을 지을 수 있다. 우리는 많은 업적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믿고 산다. 하지만 업적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업적은 단지 업적을 이룬 그 순간에만 만족을 가져올 뿐이다. 정작 우리의 행복에 간여하는 것은 업적보다는 업이 주된 역할을 한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집착, 분노, 무지가 커졌다면 그 만큼 행복의 상태와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고 반대라면 행복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업적이라는 것에 눈 멀어 나쁜 업을 형성해가고 살고 있으며,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려하고 요란한 업적이라는 덫에 현혹되어 서서히 자신을 망가지게 하고 다치게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지은 업만이 자신이 가진 재산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그 전에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부족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업적을 추구하더라도 좋은 업을 지어가며 노력할 때 그 업적이 더욱 빛날 것이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 내 업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아니 매 순간 내 업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라훌라여, 행위하고 말하고 생각하기 전에, 혹은 행위하고 말하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성찰해야 한다. 이 행위나 말이나 생각이 나를 해치거나 남을 해치거나 나와 남 둘 다를 해치는 것은 아닌지, 이 행위가 괴로움과 손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성찰해서 나 자신이나 남을 해치고, 미래 괴로움과 손해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행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행위를 하고 난 뒤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성찰하였다면 스승이나 현명한 동료 수행자에게 고백하여 훗날 다시 그런 행위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맛지마 니까야, 암발라티까의 라훌라 교계경 중에서
많은 업적이 아니라 좋은 업을 만드는 것에 더 의미를 두게 되면 삶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업적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욕심과 집착, 분노, 무지를 바탕으로 하는 것들이 많다. 욕심과 집착, 분노, 무지가 줄어야 인격의 변화가 일어난다. 많은 업적을 남기더라도 인격의 변화가 함께하지 않으면 더 나아진 삶이라 할 수 없다. 좋은 업을 만드는 것에 의미를 두게 되면 자연스럽게 욕심과 집착, 분노, 무지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그 결과 인격의 변화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욕심과 집착, 분노, 무지는 우리를 괴롭게 하는 근본 원인이다. 근본 원인이 줄어들면 괴로운 상황도 같이 줄 것이다. 목이 마르다고 소금물을 계속해서 마시다 보면 더 강한 갈증에 괴로워 한다. 우리는 욕심을 채워가며 괴로움을 해결하려 하는데 소금물을 마시는 형국에 불과하다. 좋은 업을 만드는 것에 의미를 두게 되면 장차 미래 삶에 대한 방향도 바뀔 수 밖에 없다. 좋은 업을 토대로 하는 삶의 목적은 가면 갈수록 행복도 커지고 의미도 커지도록 우리 삶을 이끌어 갈 것이다.
어제밤에 뜬 보름달은
참으로 빛났다.
그 달을 떠서 찻잔에 담고
은하수 국자로 찻물을 떠
차 한잔에 수행한다.
뉘라서 참다운 차(茶)맛을 알리요
달콤한 잎 우박과 싸우고
삼동(三冬)에도
청정(淸淨)한 흰 꽃은 서리를 맞아도
늦가을 경치를 빛나게 하나니
선경(仙境)에 사는
신선(神仙)의 살빛 같이도 깨끗하고
염부단금*(閻浮壇金)같이
향기롭고도 아름다워라.
- 초의스님 선다시 중에서 -
자신을 위해 정성 껏 차 한잔을 우려보자. 은은한 향기와 맑은 빛깔을 머금은 찻잔에 자신을 반추하는 깨어있는 마음을 담아보자. 수 많은 화려한 업적보다 지금 이 순간의 평온한 마음, 깨긋한 업이 진정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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