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꽃,
어릴때 고향동네어른들은 긴 겨울을 지내고 울타리에
붉게 피는 명자꽃을 처녀꽃이라고 불렀다.
한참동안 이름이 처녀꽃인줄 알고 지냈다.
문득 왜 처녀 꽃이라고 불렀을까.
식물도감을 보고 산당화 혹은 명자꽃이라것을 알게 되었다.
명자 는 여자 아이의 이름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제대로 된 꽃이름을 모르니까
봄마다 붉게 피는 명자꽃을 처녀 꽃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물론 고향에서는 총각꽃이라고 하는 꽃도 있었다.
철쭉과에 속하는 하얀색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연한 분홍빛이 감도는
야산에 피는 철쭉꽃이다.
꽃 송이도 큼직 큼직하여 시원스럽게 피고
그렇게 흔하게 보이는 꽃은 물론 아니었다.
어릴때 마당이 넓지 않은 집에서 자란탓에 앞집 친구네 집은
ㄱ자 오칸집에 화단에 온갖 꽃이 계절마다갖가지 피는것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어서 밤이 되면 남몰래
꽃 도둑이 되어 가지를 꺽어 아버지가 마시고 비운 작은 소주병에
꽃을 꽂아 두고 마냥 좋아라 했던 기억이
철모르고 핀 명자꽃을 바라보니 새삼 떠 오른다.
한송이가 지고 나면 또 한송이 피고 또 지고 나면
다시 한송이가 피어 올 가을은 단풍 보다 명자꽃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가을 단풍 놀이하듯 괜실히 반갑다.
그랬다.
어릴때 나는 요즘 말로 왕따 였다.
늘 동무들에게 두들겨 맞고 점심시간에 혼자서 학교 뒷산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혼자서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런 아이였다.
동무들이 함부로 대하는 일이 늘 공포심이 앞서
두려움으로 학교를 다녔던 그런 마음이 여리고 여린 그런 아이였다.
사라지고 없을것 같았던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나의 어린시절에 보았던 처녀꽃을 보면서
나는 별별 기억들을 하게 된다.
똑 같은 명자꽃을 봄에 보았을때는 예사로웠던것도
이 가을 철없이 핀 명자꽃이 핀것을 바라보면서 단풍이 물들어
가을내내 온 산천이 인파로 난리가 났다는 뉴스를 접한 올 가을에
이미 지나고 흘러 가버린 많은 시간들을
들여다 보는 그런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내 킥킥... 혼자 웃고 만다.
지금의 나를 보고 있는 어느 누가 내가 어린시절 왕따
소녀였을거라고 아무도 의심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막 출가 해서 나를 기억 하는 스님들 역시 조용 조용하고
온순하기만 했던 나를 기억 하고 있고 백명이 가까운 대중에서
행자 한명 들어오면 조용한 가운데에서도 지대방에서는
이런저런 여러 말들이 오고간다.
얼마전 행자때 큰방스님이셨던 어른스님을 만났는데
들려 주신 이야기 중 큰방 스님들의 눈에 비친 당시의 나의 모습을
듣고 나는 적지아니 놀랬다.
집도 절도 없이 길거리 노숙자로 살다가 들어온 어린 아이라고
이야기가 오고 갔다는 사실에 정말 놀래고
웃음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출가해서 용감한 아이에서 뭐든 거침없고 당당한 그런
사람으로 타인의 눈에 비춰진 그런 사람으로 변해 있다는 사실이다.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는 뭐든 거침이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두려움이 사라진 그 자리에는 언제나 당당할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나의 출가 수행길에서 왕따 가 되는 그런 일은
부처님의 진리의 품 안에서는 존재 할수 없다는 사실이다.
올 가을,
철 모르고 핀 명자꽃을 바라보면서
나도 철들지 않고 조금 더 허술하고
조금 더 어눌 한 그런 사람으로 거듭 나고 싶다.
어제 밤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뉴스를 접하고
세상은 점점 투명해 질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
결코 허상의 꿈이 아니기를 기도 해 본다.
약자가 따로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
약자는 스스로 만든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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