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사주팔자
제목을 거창하게 달아놓았지만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신자라고 해도 사주팔자에 혹하는 것이 세간에 떠도는 인정(人情)인지라 한 번 쯤은 정리하고 싶은 것이다.
요즘은 사주팔자(四柱八字)로 대변되는 역학(易學)이 생활에 깊이 뿌리내린듯 하다. 신문에도 '오늘의 운세' 나 '인생상담' 등을 통해 은연중 사람들에게 팔자론을 심어주고 있는 듯 하다.
불교와 사주팔자는 여러모로 대비된다. 물론 공통점이 아주 없지는 않으나 다른 점이 더 많다.
불교의 근본은 연기법(緣起法)이고, 이를 응용하여 인과법, 인연법 등으로 불린다.
필자는 불교와 사주팔자를 인연법(因緣法)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불교의 목적은 깨달음이다. 물론 복락(福樂)을 구하는 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상구보리(上求菩提)가 불교의 목적이다.
이에 비해 사주팔자의 목적은 부(富)와 귀(貴)이다. 해탈이나 깨달음이 목적이 아니다.
부와 귀에 합당하지 않으면 팔자가 나쁜 것이고, 부와 귀에 합당하면 팔자가 좋은 것이다.
부와 귀를 다른 말로 풀어보면 오욕락(五慾樂)이다. 식욕ㆍ성욕ㆍ수면욕ㆍ재물욕ㆍ명예욕이 고루고루 충족되면 팔자가 핀 것이다.
그런데 인연이란 인(결과에 대한 원인)과 연(결과를 일어나게 하는 행위)의 결합어로 이 중 어떤 것에 더 치중하느냐에 따라 생활의 방식이 달라진다는데에 문제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사주팔자는 인(因)에 더 치중하는 것 같고, 불교는 연(緣)에 더 치중하는 것 같다.
인과 연은 여러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필자는 인(因)을 '결과에 대한 원인'으로, 연(緣)을 '결과를 일어나게 하는 행위'로 해석한다.
사주팔자를 한 번 보자. 한 번 태어난 일시는 바꿀 수가 없다. 몇년 몇월 몇일 몇시에 태어난 것은 이미 정해진 것으로 숙명이다. 사주 책에 무슨 살(煞)이 끼고 운세는 몇 세부터 일어나고 하는 것은 태어남으로 인해 자동으로 부여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결과에 대한 원인(팔자)이 이미 정해졌으니 이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업설(業說)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런 업설은 좋지 않은 결과를 묵묵히 수용할 것과,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오늘 더 노력할 것을 권장한다. 그것이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원리다. 즉 선과(善果)를 얻는데에(결과를 얻게 하는 행위에) 더 치중하라는 것이 불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은 이런 상대적인 연기에 의함을 알고 공관(空觀)을 통해 깨달음으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인(因)에 얽매어 팔자론에 묶여버릴 것인가, 아니면 연(緣)에 더 치중하여 적극적인 행위로 나아갈 것인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는 것은 불교와 사주팔자가 똑 같이 이야기하나, 사주팔자는 '박토에 콩을 심었으니 콩이 적게 수확된다'고 이야기하고, 불교는 '박토에 콩을 심어도 거름을 주고 뙤약볕을 막아주면 콩이 많이 수확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랜저를 타고 가니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 티코를 타고 가니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사주팔자라면, '티코를 타고 가도 지름길을 잘 알고, 밤새워 달리면 더 빨리 도착한다'는 것이 불교다.
불교와 사주팔자가 어떤 점에서 더 차이가 나는지 각자가 더 생각해보자.
필자의 생각도 하나의 단면에 불과하다.
생활속에서 응용되는 불교가 되었으면 한다.
[학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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