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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2-02 01:41

차 한잔의 지혜 1

글쓴이 : 지장스님

차 한 잔의 지혜 1 (차와 문화)

- 지장스님 (초의차명상원장) -

갓 덖은 차 한 잔을 우려 마시면 우리는 그 그윽한 향과 맛에 세상 모든 시름을 잊고 깊은 행복감에 빠져든다. 그 순간 오직 차 맛만이 존재하며 다른 느낌과 생각들은 구수한 차향에 잠시 자리를 비켜 준다. 차를 사랑하고 즐기면 점차 마음이 고요해 진다. 차 자체가 우리를 고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차를 사랑하고 차를 마시는 기쁨에 젖어 만족해 있다 보니 마음이 고요해 지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진지하게 우리 자신의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면 잔잔한 호수의 표면에 밝은 달이 선명하게 비추어 지듯 우리 마음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이 순간 가만히 마음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평소 알지 못했던 어떤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평소 우리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거나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알며 살고 있다. 그런데 진지하고 냉철하게 마음의 모습을 찬찬히 숙고해 보면 마음의 상태와 생각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거나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조건과 상황에 의해 만들어지고 결정되어 진다는 사실을 새삼 알 수 있다. 이제까지는 내가 생각을 하고 산다고 알았는데 알고 보니 대부분의 경우 생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마음의 상태 또한 그 때 벌어지고 있는 주변의 상황이나 사건에 의해 매 순간 만들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또 다른 차원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더 사실적으로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실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바라보았던 방식에서 더 객관적이면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사실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이고 자신을 알아 갈 수 록 점차 마음은 또한 맑고 가벼워진다. 자신을 올바로 알아 일어나는 마음에 치우침이 없이 마시는 차의 맛을 바로 중정의 차 맛, 지혜의 차 맛이라 한다. 우리가 차를 사랑하고 차를 마시는 이유는 다양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점이 있다면 바로 차를 통해 더 잘 살아보자는 것이다. 차와 어우러져 맛과 멋을 알고 즐기는 것도 잘 살아가는 방법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바람직한 길은 지혜의 차 맛을 즐길 줄 아는 것이라 하겠다.

<차 한잔의 명상>

자신을 가장 올바로 아는 길은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사실적으로 안다는 것은 단순한 방법 같지만 현대인들에게는 낯설고 쉽지 않은 방법이다. 현대인들은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는 생활 습관 때문에 동적인 명상이 더 효과적이다. 특히 차를 마시는 행위나 느낌, 정서적 분위기는 현대인들에게 ‘지금 이 순간’을 쉽게 느끼도록 해준다. 만약 차 마시는 행다법을 배워 알고 있다면 더 유용하게 명상을 진행할 수 있다.

먼저 자리에 앉아 허리를 펴고 반가부좌 자세로 앉는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어깨나 가슴의 힘을 빼준다. 몸이 이완되면 이제 앞에 차 마시는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천천히 부드럽게 손을 들어 마치 실제로 차 도구를 다루 듯 다포를 개고 다구를 정리하는 동작을 해본다. 오직 손의 움직임과 느낌만을 의식하며 차 마시는 과정을 끝까지 진행해 본다. 실제로 차를 마시지는 않았지만 향긋한 차를 마신 듯 정신이 개운해지고 이 후 이어지는 명상이나 공부를 더 잘할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