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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27 01:25
현대 차생활의 명상적 접근 5
 글쓴이 : 김문숙
조회 : 2,261  
3. 차생활에 나타난 禪修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즐겨 마시는 茶가 단순한 飮料로서의 수준을 넘어 정서적 안정과 수행의 단계까지 영향을 끼친 것은 과거 우리나라의 茶文化 발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차를 끓여 마시고, 차를 마신 후 명상하는 일을 참선 그 자체로 보았으며 그리하여 차생활에서 자아의 참모습을 발견하거나 見性할 수도 있다고 생각 하였다.
禪이란 禪定을 일컫는 것으로 정려(靜慮) 즉, 고요히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는 마음을 다스려 잡념을 일으키지 않고 無我靜寂한 가운데서 진실한 자기의 참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茶人들이 조용히 찻물을 끓이고 손수 차를 달여 마시는 전체 茶事의 행위는 한 점의 삿됨이 없는 思無邪한 眞性이기에 이는 바로 禪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선인들은 차를 끓여 마시는 일과 參禪은 마음상태와 분위기가 하나 됨에 익숙해지면 둘 다 자연스럽게 체득한다고 보았다. 이는 선승들이 茶와 禪은 하나이다(茶禪一如)라는 생각에 차생활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선수행을 했던 것 같다.
정상구는 禪은 참선을 통한 마음의 수양이고 茶는 차생활을 통해서 마음의 수양과 더불어 차의 효능을 얻게 되는 것이라 하였으며, 또한 선은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유익함을 조성하며 茶는 茶事의 수련을 통하여 유익함을 주는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진정한 다도인의 차생활은 차를 좋아하고 즐기는 차원을 넘어 茶禪一如의 경지에서 차를 통하여 氣와 體를 통일하고 나아가 마음과 몸을 통일하는 알파의 경지에 이를 때 茶道三昧에 이르며 모든 사악한 마음을 다 털어버린 無邪意한 마음으로 차를 마실 때 이는 불교의 禪에 있어서 자기를 버리며 자기를 되찾은 법희선열(法喜禪悅)과도 통한다고 하였다.
초의는 다도삼매의 길이 법희선열의 길과 통함을 다음 茶詩에서 노래하였다.

차의 참 모습을 나타낼 때
그 환희스러움
깊은 정회
어찌 이보다 더하랴

一廻見面一廻歡
有甚情懷可更切.

그리고 초의는 茶는 삿됨이 없어 德이 높다고 하였고 손수 물을 긷고 불을 피워 알맞게 익은 물로 茶를 달이는 등의 茶生活을 통해 修身하고, 茶事에서는 中道를 체득하고자 하였다. 또한 초의는 『茶神典』에서 ‘차를 마시는 데 사람이 적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혼자 마시는 것을 신령스럽다’고 하였다. 즉, 홀로 마시는 차를 통해 禪定에 듦으로서 修身하는 기회로 삼고자한 것이다.
또 초의는 김명희에게 보낸 글에서 ‘차는 군자와 같아서 그 성품에 삿됨이 없다’고 하였다. 즉, 茶는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修身하게 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매개체이기도 하여 일상적인 차 생활 속에서 정성들여 끓인 한 잔의 차를 통하여 마음의 평정을 이루고 나아가 진리를 추구하는 단계까지 도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조주선사(778~897)의 ‘끽다거(喫茶去, 차 한잔 마시게)’는 平常心을 말함인데 이 평상심은 마음을 비운 청정한 상태가 바로 선의 경지가 되는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한 잔의 차를 권함은 평상심이 곧 道라는 경지임을 알 수 있고 바로 茶와 禪이 하나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차를 마시고 난 후 참선하듯이 명상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한 詩로 이규보가 귀한 차를 선물 받고 쓴 詩를 예로 들면

어느 날 그윽한 암자 찾아가
두어권 진리서 펼치고 깊은 뜻 나누리
몸은 비록 늙기는 해도 손수 샘물 길을 수 있으니
한잔의 차는 바로 참선의 시초라네

草庵他日叩禪居
數卷玄書討深旨
雖老猶堪手汲泉
一甌卽是參禪始.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손수 물을 기르는 자득 수행(自得修行)하는 그의 茶人으로서의 수행심과 직접 차를 끓여 홀로 마시는 것이 바로 참선의 시초이며 禪의 경지에 이르고저 하는 마음임을 알 수 있다.
신위도 다선일여의 차생활을 하였는데 그의 글을 보면

쓴차 엄숙한 시간은 속된 마음을 바로 잡게 하고
좋은 곳에서 좋은 詩 대하니 참선하는 것 같구나

苦茗嚴時時宜砭俗
好詩佳處合參.

라고 하여, 엄숙히 차 마시고 참선하듯 차생활을 즐긴 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김명희는 초의에게 준 글에서 차를 마시고 나면 바라밀에 든다고 하였다.

늙은 스님은 차 싹따기를 부처님 고르듯 하며
일창일기만을 따는 엄한 규칙을 지킨다오
차를 덖어 말리는 일은 더욱 잘하여 부처의 깨달은 경계이니
향기와 맛을 따라 바라밀에 든다오

老僧選茶如選佛,
一槍一旗嚴持律.
尤工炒焙得圓通,
從香味入波羅蜜.

즉, 차 마시고 참선에 들기 전에 달관한 솜씨로 茶事에 임함을 禪의 한 과정으로 行하였다. 그리고 김시습이 ‘마음이 물처럼 맑아서 사물과 자아를 잊는 경지 [忘物俄]’에서 혼자 차를 따라 마신 것이나, 추사 김정희가 쓴 「명선(茗禪)」등은 차를 끓여 마시는 일이 禪生活, 즉 禪修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승려나 옛 선인들의 선수행시에는 항상 茶가 있었으며 茶는 바로 禪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茶를 마시는 것은 바로 茶事를 통해서 心身을 닦는 것을 일컫는데 이러한 성향은 그대로 禪修行을 통해서 자기의 心性을 터득하려는 일과 일치하는 것이다.
정영선은 茶가 禪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하나로 보는 이유를 다음 4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 차를 마신 후에는 차의 각성효과로 인해 피로가 덜어지고 正念을 더욱 깊게 하므로 자기의 참모습을 보게 되고 正見을 지니게 되어 큰 진리를 깨닫게 된다.
둘째, 다도와 참선의 궁극적 목적이 둘 다 삶의 진리인 道를 얻기 위함이며, 그 과 정도 생각으로 깨우침을 얻는 것이므로 같다. 따라서 마음상태와 분위기가 생각을 잘하기 위함에 초점을 두게 되고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
셋째,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고 찻물 끓는 소리를 듣고 잔에 따라 마시는 동안 불 과 물과 茶 라는 자연과 가까이 하며, 차를 끓이는 일에 몰두하면서 망상이 없어지고 自我의 집착이 없어져 禪에 몰입한 것과 같아진다.
넷째, 차의 性은 부처와 같고, 차라는 물체의 불성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이상과 같이 한 잔의 차를 마시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禪에 들어가면 때로는 삼매를 체험하고 悟道할 수 있었다. 즉 茶를 매개체로 하여 차 생활을 통해 禪을 행하고 나아가 道에 이르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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