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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1-2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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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상 기초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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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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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상 기초 14> 마음의 상태는 대상을 어떻게 알고있느냐에 결정된다.
1. 집중하려 하지 말고 집중하게 하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흔히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명상은 마음을 고요히 하거나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다. 그래서 명상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열심히 마음을 집중하거나 한마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몰입되어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자기 자신을 잊고 다른 생각 없이 정말로 고요하거나 편안할 수 있다. 한 때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말이 유명해 진 적이 있는데 마음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으며 마음을 다스리면 성공할 수 있거나 건강해 질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유익하게 훈련시키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여러 마음 훈련법 등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은 그렇게 쉽게 훈련되지도 않고 또 오래 집중하도록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절박한 상황이거나 재미있는 대상을 만날 때, 강한 열의가 있을 때 쉽게 대상에 집중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마음은 좀처럼 집중되지 못한다. 마음이 집중되지 못하면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서 집중하는 훈련을 하게 되는데 많은 시간 투자를 해도 쉽게 집중력이 얻어지지는 않는다.
만약 좀 더 현실적으로 명상을 하고자 한다면 무작정 마음을 훈련시키기 보다는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마음이 잘 집중되는지를 알아 그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가령 마음이 집중될 때는 절박하거나 재미있을 때, 열의 등이 있을 때라고 하였는데 절박한 것은 어쩌다 그렇게 되는 상태지 마음대로 만들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재미와 열의는 노력에 따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평소 재미나 흥미를 느끼는 명상 도구나 대상을 활용하며 수시로 자극과 동기부여가 생기게끔 한다면 쉽게 집중이 일어나게 할 수 있다. 효과적인 명상이 되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알아야 될 사항은 명상이 잘 되는 조건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어려운 조건보다는 효과적인 조건을 활용하여 빨리 명상에 필요한 힘을 기르는 것이다.
2. 마음의 상태는 그 대상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달려있다.
또 한 가지 알아야 될 사항은 우리의 마음은 훈련을 통해 변화되기 보다는 이해를 통해 더 빨리 변한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정말로 중요한 항목인데 몇 가지 설명을 붙여보겠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동시에 반응한다. 그 반응의 속도는 빛보다도 몇 배나 빠르다. 흔히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보거나 어떤 소리를 들을 때 마음은 그 순간 반응한다. 자각을 잘 한다는 사람도 이미 반응이 일어난 다음 알게 되지 반응이 일어나기전이나 일어나는 순간을 알지는 못한다. 알고 나서 빠르게 흘려버릴 뿐이다. 마음은 대상을 알고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상태는 그 대상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대상과 상관없이 마음을 컨트롤 하기는 쉽지 않다. 마음을 변화시키려 한다면 집착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을 더 깊이 더 사실적으로 보아 그 본래의 특성을 보고 대상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집착하거나 싫어하는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인 방법인 것이다.
알기 쉽게 예를 든다면 이러한 예를 들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맛있게 김치찌개를 먹고 있는데 절 반 쯤 먹고 있을 때 누군가 커다란 바퀴벌레를 보았다고 하자. 그 바퀴벌레를 본 순간 이제까지 맛있게 느껴졌던 김치찌개가 한 순간 혐오스런 음식으로 변해버린다. 음식에 대한 마음이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퀴벌레는 본 순간이다. 즉 대상에 대한 인식이 마음의 상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젊은 부인이 오후에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친구는 그 젊은 부인의 남편이 어느 다른 젊은 여인과 다정히 팔짱을 끼고 호텔에서 나오더라는 내용과 함께 남편 관리를 잘 하라는 충고를 받기 까지 하였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 젊은 여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고 그 순간부터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극도로 괴롭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 들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자신을 배신하였다는 사실에 괴로움은 지칠 줄 몰랐고 저녁에 남편이 돌아왔을 때 너무나 속이 상해 이불만 덮어 쓰고 울기만 하였다. 다음 날 남편은 영문도 모른 체 출근해 버렸고 너무나 힘든 나머지 그 젊은 여인은 친정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 부인의 동생이 전화를 받았는데 동생이 인사말과 함께 어제 형부를 만나 맛있는 것 사달라고 해서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는 말들 듣게 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젊은 여인은 친구가 보았다는 여자는 결국 자신의 여동생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간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거의 하루 동안 지속되던 극심한 고통이 순식간에 녹아버렸고 오히려 남편에 대한 미안한 마음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이무석 박사의 ‘30년만의 휴식’에서 내용 인용) 이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젊은 부인이 괴롭게 되거나 또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될 때 걸린 시간은 순간이었다. 대상이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마음이 달린 것이지 괴롭거나 괴롭지 않게 하기 위하여 마음에 물리적 노력이 가해진 것은 절대로 아니다.
마음은 대상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따라 그 상태가 결정되기 때문에 마음이 괴롭지 않으려면 그 대상에 대한 사실적 이해가 대단히 중요하며 그래서 명상은 보고 아는 것에 더 비중을 둔다.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할 때 보고 아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그냥 마음을 훈련시키는 정도에 머물렀기 때문에 큰 효과를 얻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3. 자기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고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마음의 상태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며 자신에 대한 무지가 괴로움의 주요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자신에 대한 이해 정도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 말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나와 실제로 작용하고 있는 나의 마음 및 육체는 다르며 그 간격이 크면 클 수 록 괴로움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생각에 대하여
우선 우리는 우리가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아니면 생각이 스스로 일어나는지를 구분해야만 한다. 지금 곰곰이 숙고를 해보자. 평소 자신이 생각을 하고 산 것인지, 아니면 생각들이 그냥 막 올라온 것인지. 이 부분은 잘 구분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생각한 것이지 그 생각들이 스스로 일어난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만약 일어나고 있는 생각이 전부 내가 일으킨 것이라고 한다면 하루 종일 하고 싶은 생각만 하거나 아니면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많은 시간 우리가 원치 않는 생각들이 일어나 우리 스스로를 불만족스럽게 만든다. 사실 생각은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 어떤 조건과 원인이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즉 보거나 듣거나 느끼거나 혹은 과거의 기억 등이 조건과 원인이 되어 매 순간 생각을 만들어 낸다.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엄밀히 말해 생각은 일종의 의도이다. 여러 조건들이 만나 어떤 의도를 일으키게 만드는 것이다. 가끔 우리는 ‘업을 짓는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업을 짓는다라는 것은 의도를 일으킨다와 같은 말이다.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는 어떤 조건과 원인, 상황들이 상호 작용하여 생각이 일어나도록 만드는데 그렇게 일어난 생각을 과연 내 생각이라 말 할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논리적으로 내 생각이라 말하려면 실제로 내 의지대로 하고 싶은 생각을 하거나 하기 싫은 생각은 안 할 수 있어야만 된다. 그러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조건과 상황들이 생각을 일어나게 했기 때문에 이 생각들을 엄밀히 내가 일으킨 생각이라 간주하기는 힘들 것이다.
2) 감정이나 마음의 상태에 대하여
이번에는 우리의 감정이나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 살펴보자. 우리에게는 현재 어떤 상태로든 감정이나 흔히 컨디션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상태라는 것이 작용하고 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재미있거나 따분하거나, 활기차거나 우울하거나 의욕에 차 있거나 기운 빠져 있거나 아니면 특별한 감정이 없는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이나 마음의 상태도 과연 매 순간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것인가? 이것들도 엄밀히 말해 우리 스스로가 결정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마음의 상태와 감정은 시시때때로 변화하는데 우리의 의지대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조건과 상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쁜 일이 있으면 기쁘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괴롭고 또 마음의 상태 또한 어떤 때는 맑고 기운차다가 어떤 날을 피곤하고 기운이 빠져 있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직접 그 감정이나 상태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그러한 감정이나 상태가 만들어지는 조건을 만들지 직접 그 감정이나 상태를 만들려고 애쓰지 않는다. 우리는 평소 내가 즐겁고 내가 괴롭고 내가 어떻다 등등 말하는데 여기서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감정이나 마음의 상태도 엄밀히 내 것이라 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3) 느낌에 대하여
또 다른 것으로 우리 몸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느낌들을 살펴 볼 수 있다. 우리 몸에서는 아프기도 하고 덮거나 춥거나 시원하기도 하며 쾌락적인 느낌 등 참으로 다양한 느낌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 느낌들도 어찌 보면 우리 스스로 만들지는 못한다. 그런 느낌들이 일어나는 조건은 만들 수 있지만 느낌 그 자체는 우리 의지대로 만들 수 없다. 평소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은 마찬가지로 어떤 조건과 상황에 의해 만들어 진다. 그렇게 조건과 상황에 의해 만들어지는 육체적 느낌 또한 엄밀히 내 것, 혹은 내가 일으킨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4) 몸의 작용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우리 몸의 작용을 살펴보자. 우리 몸은 지금 이 순간도 쉬지 않고 지속적인 신진대사 활동을 하고 있으며 심장과 폐, 위 등 우리의 오장 육부는 스스로 알아서 잘 작용해 주고 있다. 이것들이 문제없이 알아서 잘 작용해 주면 건강하다고 하고 그렇지 못하면 병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 몸의 신체적 작용 또한 겉으로 움직이는 것 외에는 작은 세포서부터 거의 다가 어떤 조건과 상황에 의해 작용한다. 간혹 이들 신체조직의 기능과 운동에 거슬리는 생활과 음식을 오래 접하게 되면 기능들이 방해 받게 되고 결국 병으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그토록 확실히 여겼던 몸마저도 사실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는 않고 있다.
5) 생노병사에 대하여
더 근원적으로 보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부터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다. 우리 부모님의 의지에 의해 태어난 것이지 우리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또 자라고 늙어가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 또한 우리가 원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며 마지막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도 우리가 원해서 떠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안가기 위해 발버둥 치다 정신없이 떠나간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더 사실적으로 살펴보면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어찌 보면 거의 다 어떤 조건과 상황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반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6)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2008년 중국 북경에서 올림픽 경기가 있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해주어서 모든 국민이 경기가 열리는 내내 긴장과 기대를 가지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도록 해주었다. 야구에서 금메달을 따는 순간은 정말로 짜릿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양궁 같은 종목에서는 참으로 속상한 마음이 하루 종일 지속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다 이겨서 금메달을 따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경기 결과는 꼭 우리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경기의 결과가 우리의 바램과 일치하면 기쁘고 신나는 일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속상하고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나 알고 보면 운동경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비롯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대부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 의해 만들어 지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평소 ‘나’다, ‘내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상은 조건에 의해 만들어 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에 반응하고 어떤 의지나 판단을 하고 살 뿐이다. 그리고 내 주변 상황이나 조건 또한 또 다른 조건이나 상황에 의해 결정되고 만들어 지지 전적으로 내 의지대로 되어 주지는 않는다.
4. 원하는 바와 되어지는 결과 와의 거리감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보면서, 들으면서, 생각하면서, 또 느끼면서 만들어 지고 있는 나 자신 또는 주변 여건이 나의 바램과 일치하지 않으면 우리는 괴롭고 화가 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만들어지고 있는 나 자신과 세상이 나의 바램과 일치하면 우리는 기뻐하고 만족해한다. 현실적으로는 의지와 부합되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거의 다기 때문에 그래서 삶이란 괴로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되어 지고 있는 현실과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의 거리가 기쁨과 괴로움을 결정한다.
5. 제대로 보고 알기
그렇다면 괴로운 상태가 만들어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만들어 지고 있는 것들이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 아니면 만들어 지고 있는 나 자신과 세상이 매 순간 조건에 의해 만들어 지고 있음을 잘 알고 그것들에 특별한 반응을 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첫 째 방법은 분명 불가능한 방법이다. 그러나 두 번째 방법은 제대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금씩 그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
놀이 공원에 있는 유령의 집에 들어갔다고 하자. 어렸을 적에는 너무나 무서워 앞으로 성큼 걸어가기가 주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다시 간다면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것이다. 이것들이 만들어 진 상황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실을 올바로 이해함을 통해 우리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다. 더 정확하게 알 아 갈 수 록 반드시 그 현상에 반응하는 차원이 달라진다. 지금 만약 방안에 불이 켜져 있다고 해보자. 불이 켜져 있다는 사실이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기쁘게 하지 않는다. 그저 켜져 있을 뿐이고 나에게서 특별한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나’라고 여기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정말로 잘 알고 나면 그만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결국 마음은 가볍고 평온해 지게 된다. 사실적으로 나를 알아갈 때 알아야 될 ‘나’는 반드시 지금 이 순간 실재하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 생각으로 만든 내가 아니라 지금 숨 쉬고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그 자체이다.
6.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는 것이지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명상의 전체적인 과정은 괴롭지 않고 지혜롭게 살기위한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근본적인 원리는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지혜로워지는 원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명상이 왜 괴롭지 않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인가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반응을 일으킨다. 이러한 반응은 현재 혹은 미래의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우리가 대상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것은 아주 빠른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이미 일어난 반응은 강한 집중력과 정신력으로 억제하거나 잠시 잊어 버릴 수는 있어도 제거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아예 괴롭게 할 원인을 만들지 말아야 하며 대신에 긍정적이거나 지혜로워지는 원인들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자기 절제와, 집중, 통찰의 방법들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 자신과 명상 수행법에 대해 이해를 넓혀 가게 된다. 자신에 대한 이해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인식이 바뀌어야 근본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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