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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1-0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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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설명한 깨어있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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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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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설명한 ‘깨어있음’ 1
(Mindfulness in Plain English)
Venerable H. Gunaratan Mahathera
장화경 편역
제 1 장 왜 명상을 하는가?
명상은 결코 쉽지 않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용기, 결단력, 자제력도 필요하다. 명상은 우리가 흔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피하고 싶어 하며 하기 싫어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마음을 내도록 하며 그것들을 습관화 하도록 요구한다. “확고함” 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명상 수행은 확고하고 강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당연히 편안하게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훨씬 쉽다.
그렇다면 왜 하기 힘든 훈련과 습관을 계발시켜야 하나?
왜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고 많은 시간을 힘들게 노력 해야만 하는가?
?
간단히 말해서 그 이유는 당신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인간’이다라는 것으로써, 당신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 여러 가지 불만족스러움을 상속받았다. 당신은 그 불만족스러움을 짧은 시간 억누를 수는 있다. 한참동안 다른 곳에 신경을 돌릴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느 새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다시 또 나타난다. 갑자기 난데없이 당신은 당신의 현 상황을 실감할 것이다.
당신은 인생을 간신히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겉으론 그럴싸해 보인다. 절망적인 순간들, 모든 것이 자신의 어깨를 누르는 압박감은 사실 숨기고 산다. 당신의 상태는 엉망진창이다. 당신은 그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그럴싸하게 숨긴다. 하지만, 저기 저 밑에 당신은 다르게 살 방법,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고, 인생을 더 만끽할 방법을 갈구 한다. 우연히 삶이 풍요로워 질 수 있다. 좋은 일자리도 생기고, 사랑도 하고, 경쟁에서도 이긴다. 한동안 상황은 참으로 좋다. 생활이 윤택하고 뚜렷하며, 지나간 나쁜 기억들과 지루함이 희미해져 버린다. 삶의 내용이 달라지며, 당신은 “나는 드디어 해냈어. 난 앞으로 행복할거야” 라고 혼자 외친다. 하지만, 그 기분은 마치 바람 속 연기와 같이 사라져 버린다. 오직 희미하게 감지되는, 무엇인가 완전하게 잘 되지 못했다는 느낌과 행복했었던 기억만이 남는다.
그러나 실은, 당신이 보고 있지 못하는 아주 다른 깊이와 감성이 존재하는 세계가 분명히 있다. 당신은 무엇인가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달콤한 경험들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삶을 살고 있지 않는 듯 한, 실패한 듯 한 그런 느낌을 느낀다. 이때, 그 흐릿했던 기억도 사라지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세상은 여전히 역겹고 지루한 곳으로 보인다. 감정적 롤러코스터의 밑바닥에서 최고점을 갈망하며 많은 세월을 보낸다.
그런데 당신은 왜 이러는가? 미치광이 인가? 아니. 당신은 그저 사람일뿐. 모든 인간들이 겪고 있는 병을 앓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여러 형태를 가진 괴물일 뿐이다. 만성적인 긴장감, 꽉 막힌 기분, 감성적인 마비상태, 찾아볼 수 없는 자비심 등등. 아무도 이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우리는 그것을 부인하려 하고, 억누르려 하고, 그것으로부터 숨으려고 하고, 목표와 과제들로 우리 스스로를 바쁘게 채찍질한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없어지질 않는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인식 밑에 깔려있는 기본 흐름이다. 그 소리 없는 목소리는 우리의 뒷골에서 “아직도 불충분해. 더 있어야만 해. 더 잘 해야돼” 라고 외친다. 그것은 괴물이다. 모든 곳에 교활히 작용하는 괴물일 뿐이다.
파티에 가봐라. 겉으로는 즐거움을 나타내고, 속으로는 두려움을 말하는 목소리와 웃음을 들어봐라. 그 긴장감과 압박을 느껴봐라. 아무도 편안하지 않다. 모두 다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야구장에 가서 팬들을 살펴봐라. 알 수 없는 분노의 폭발, 열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컨트롤 할 수 없는 짜증, 충성으로 나타나는 걷잡을 수 없는 자만. 술주정, 싸움질, 이것들은 사람들 속에 있는 긴장상태를 소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사람들 속은 매우 불편하다. 뉴스를 들어보라. 팝송 가사를 들어보라. 똑같은 주제가 반복되고 있을 뿐. 질투, 괴로움, 불만족, 그리고 스트레스.
인생은 끊임없는 괴로움이다. 어마어마하게 희박한 확률에도 불구한 무한대의 노력이다. 우리는 이러한 불만족스러움을 어떻게 해결하나? 우리는 “만약 ~ 했더라면...” 이라는 증후군에 걸려있다. 돈이 더 많았더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더라면... 10kg 만 뺄 수 있다면... 곱슬머리 였다면... 등등. 이게 도대체 어디서 온 쓸데없는 생각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 걸까? 이것은 우리 마음상태에서 오는 것이다. 이것은 깊고, 모호하고, 널리 미치는 정신적 버릇이다. 한 단계 한 단계씩 만든 Gordian 매듭을 차근차근 풀어야 하듯, 우리는 우리의 인식 과정을 재 정비해야한다. 한 조각 한 조각씩 끄집어내고, 불에 비춰보고, 우리의 무의식을 의식으로 천천히 한 조각씩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삶의 핵심은 끊임없는 변함이다. 매 순간마다 삶은 흘러가고, 절대로 머물지 않는다. 끊임없는 변화가 끊임없는 우주의 핵심이다. 생각은 머리에 떠오르는 순간과 함께 없어진다. 또 하나의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도 없어진다. 한소리가 귀를 때리는 순간 바로 후엔, 고요함이 있다. 눈을 뜨면 세상이 밀어 닥치지만, 깜빡하면 없어진다. 친구들은 떠나고, 친척들은 죽는다. 재산도 생기고 없어진다. 계속 변화한다. 바뀌고 바뀐다. 같은 순간이란 없다.
이 사실에 아무 문제가 없다. 우주의 법칙일 뿐. 하지만, 인간 문화는 이 끝없는 흐름에 이상한 반응을 일으키게 되어왔다. 우리는 경험들을 분류한다. 모든 인식들, 모든 정신 상태들을 3가지 작은 상자 안에 넣으려 한다. 좋고, 나쁘고, 중립적인 것들로. 어느 상자에 해당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이미 틀에 박힌 정신적 반응을 나타낸다. 만약 인식된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움켜쥐려 하고, 어루만지고,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건을 정신의 습관적 “갈애”라 부르자.
마음의 다른 구석엔 “나쁨”이라는 작은 상자가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나쁘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멀리한다. 그것을 부인하고, 거부하고, 없애려한다. 경험에서 멀리하고 도망가려 한다. 이것을 정신의 습관적 “거부”라 부르자. 이 두 가지 상자 사이엔 중립의 상자가 있다. 여기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경험들을 집어넣는다. 그것들은 미적지근하고, 중성적이고, 흥미롭지 못하며, 지루하다. 우리는 액션이 많은 곳, 즉 끊임없는 갈애와 혐오감으로 돌아가기 위해 중립적 상자에 많은 경험을 넣어버린다. 이 분류의 경험들은 충분한 주의를 받지 못한다. “무시함”이라 부르자. 이 모든 행동은 지속적으로 쳇바퀴 속에서 달리는 것일 뿐이다. 끝없는 즐거움의 갈망, 끝없는 괴로움으로 부터의 도망, 끝없이 우리 경험의 90%를 무시함. 그러고는 왜 인생이 이리 맛이 없는지 의아해 한다. 결론적으로 이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열심히 즐거움과 성공을 추구해도 실패할 때도 있다. 아무리 빨리 도망 가려해도 괴로움이 당신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이 와중 인생은 하도 재미없어 고함을 지를 것만 같다. 우리의 정신은 의견과 비판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우리가 쌓아놓은 장벽 안에 갇혀서
싫고 좋은 것들 속에 죄수 생활을 한다. 고통스러워한다.
매우 절망적이지 않는가? 다행히 절대 그렇지 않다. 일상적으로 하고 있듯 쳇바퀴 안에서 뛰고 있으면서 바라본다면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 밑에는 세계를 바라보는 전혀 다른 관점이 있다. 이곳에서는 정신이 시간을 멈추게 하려 하지 않고, 좋은 경험을 움켜지려 하지 않고, 싫은 것은 외면하고 그것으로부터 도망가려 하지 않는다. 좋고 싫은 것, 희락과 통증을 초월한 세상이다. 세상을 인식하고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어렵긴 하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다음 호에서 계속됨)
초의차명상 www.teanm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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