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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1-0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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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흐름을 넘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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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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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흐름을 넘어 2
(Beyond the Stream of the World)
by Phra Acariya Thoon Khippapanno, 조준래 편역
3. 스승과 부처님 가르침의 선택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명상을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는 기초 단계에서 스승으로 부터의 도움을 찾게 된다. 그때 우리가 정견을 가진 올바른 스승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의 수행은 정도(Noble Path: magga)를 따라 진행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이생이나 가까운 미래의 생애에서 궁극적 목표(Nibbana)를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삿된 견해를 가진 스승에 의해 인도된 다면, 우리의 수행은 유익한 결과 없이 끝없이 표류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명상 수행에 있어 올바른 스승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첫 걸음이다. 이것은 마치 올바른 차선을 선택하면 지체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잘못된 차선에 위치하게 되면 시간만 낭비하고 원하던 목적지에 결코 도착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우리의 지혜를 동원하여 우리가 정견의 차선에 있는지 아니면 삿된 견해의 차선에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명상의 출발점이다. 이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진다면, 우리의 수행 과정은 삿될 뿐만 아니라, 험난할 것이고, 아마도 이생에서 그 수정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붓다의 시대에도 올바른 수행과 삿된 수행의 사례들이 수없이 많았었다. 많은 명상 지도자들이 나타났고, 그들 각자는 그들을 극진히 신뢰하고 따르는 많은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었다.
추종자들은 그들의 스승의 가르침을 신봉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갔다. 이런 현상은 지혜와 이성에 기초하지 않은 맹목적인 신념이다. 이성적인 판단이나 논리적인 검증 없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고, 그것이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직행길이라는 것을 그냥 믿는 것이다. 이렇듯 만약 우리가 생을 통해 우리 자신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리 자신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근간을 세우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궁극적인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앞서 언급 대로 수행하면서 서로 모순되는 견해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수행 방법에 관한 많은 의견차이와 다툼이 생기게 되고 여러 승려와 재가 스승에 의해 세워진 많은 종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종파의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것들을 진리로 수용하려는 추종자들에게 전수되어 왔다. 이들 추종자들은 그들이 믿는 진리와 지도자에게 너무나 열성적이고 헌신적이어서 다른 스승들이나 진리를 찾는 노력을 중단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스승을 찾는 단계에 있다. 이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담았다는 서적이나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을 접하게 된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로 다른 견해들을 접하게 되고 그것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혼란을 풀기 위해 질문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상이한 대답 때문에 다시 혼란이 가중되기만 한다. 이렇게 본인 자신의 굳건한 판단의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는 우리는 어떤 수행 방법을 채택해야 하는지 확신할 수 없으며, 모순 속에서 곤혹스러워 하며 방황하게 된다.
또 명상 수행에는 많은 과정이 있다. 그 과정들은 경우에 따라 거칠기도 하고 정제되어 있기도 하다. 앞서 말한 혼란은 명상의 다양한 과정과 단계를 바른 순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가 동일한 명상 원칙이라도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중 거친 명상 과정과 정제된 명상 과정을 따로 두 스승으로부터 소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가 그 두 과정을 단순 비교하면, 두 스승들이 마치 서로 다른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다고 단정지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명상의 방법을 올바로 선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혜를 가지고 올바른 순서로 조직화하여야만 한다. 이것을 달성하는 것을 명상 수행에서 지혜로움이라 한다.
이는 어떠한 종류의 명상 수행에 접어들기 전에 반드시 우리는 그 명상법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지혜로운 통찰을 통하여 세심하고 분별있게 사고해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올바르지 않은 견해에 빠져들면, 그 사람이 어떤 노력이나 생각을 하는 것과 상관없이 결과는 항상 올바르지 않고 만다. 이는 마치 그 색깔이 금색이라 해서 가짜 금이 진짜 금이 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어리석고 경험이 없는 사람이 속아서 가짜 금목걸이를 진짜로 알고 샀을 경우 전문가가 그것이 가짜라고 알려주더라도 그것을 받아드리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 명상 수행에 있어서 삿된 견해는 지혜롭지 못한 마음에서 기인한다. 그 경우 마음은 오욕(defilements/kilesa)과 조건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나 합성된 생각들(sankhara)에 현혹되어 망상과 오해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정작 자신의 마음은 불순함과 갈애로 가득한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 개발에 대하여 떠벌려 자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지옥, 극락, 정도, 해탈에 대하여 설교하게 된다. 하지만 설교하는 지식은 모두 거짓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을 현혹시키는 합성된 생각들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혜 없는 생각은 망상과 오해을 깊고 심각하게 하여 그 어떤 지혜로운 자도 도와줄 수 없게 된다. 이는 의사가 말기 암 환자를 치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이는 자기의 마음 개발이 다른 이들의 그것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자만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삿된 견해를 가진 이들은 의사가 처방하는 약을 거부하는 환자처럼 안타까운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초의차명상 www.teanm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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