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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1-0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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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설명한 깨어있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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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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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설명한 ‘깨어있음’ 3
(Mindfulness in Plain English)
Venerable H. Gunaratan Mahathera
장화경 편역(초의차명상원 연구회원)
명상: 이런 것은 아니다.
명상은 단어일 뿐이다. 당신은 이런 단어를 이미 들어보았기에 이 책을 읽고 있다. 생각의 과정은 일종의 연결 관계인데 명상이란 말엔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가 연결되어있다. 그중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은 터무니없다. 어떤 것은 위빠사나에 전혀 관계없는 관념들이다. 계속하기 전에 새로운 정보가 거침없이 입력될 수 있도록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찌꺼기 생각들을 날려 버리도록 하자. 가장 빤한 내용부터 살펴보자.
배꼽을 관찰하거나 염불을 하려고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마귀를 정복하거나, 신통력을 이용할 것도 아니다. 실력을 인정하는 색깔 있는 허리띠를 주거나, 머리를 깎거나, 터어반을 쓰라고도 안한다. 당신의 제산을 다 털어버리거나, 수도원으로 이사하지 않아도 된다. 인생이 방탕하거나 무질서 하지만 않다면, 당신은 명상을 당장 시작 하며 발전할 수 있다. 꽤나 유망해 보이지 않는가?
명상에 대한 책은 무수하다. 대부분 어느 한 종교의 입장에서 써졌다. 하지만 많은 저자들이 이것을 명시하진 않는다. 각각의 특별한 명상법에 대해 말하나, 그것들이 명상 전체에 해당되는 규칙과 같이 설명한다. 결국 남는 것은 어리둥절한 혼란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서로 반대되는 복잡한 개념들과 해설들이다. 결과는 충돌되는 의견들의 뒤범벅이며 무관계한 정보들의 난무이다. 이 책은 명확하다. 여기선 위빠사나 명상만을 이야기 한다. 당신에게 당신의 행동을 통찰 할 수 있도록 당신의 마음을 고요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방법을 가리켜 줄 것이다. 목표는 “깨어있음”이다. 너무나도 잘 어우러진 강열한 집중으로 내면의 세계를 꾀 뚫는 각성 상태이다.
명상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다. 초보자들한테서 같은 질문을 매번 듣는다. 이것들은 처음부터 발전을 가로 막을 수 있는 고정관념들 이니 당장 이것들에 대해 정리해보자.
오해 #1: 명상은 단순히 이완하고 쉬는 수단이다.
문제는 단순히 라는 말에 있다. 쉼, 이완은 위빠사나의 중요한 요소이긴 하나, 목표는 훨씬 높은 곳에 있다. 하지만, 위의 발언은 다른 명상 시스템에는 맞을 수도 있다. 모든 명상 방법들은 마음을 어느 한 물건이나 위치에 집중시키도록 한다. 강렬하고 완벽하게 집중하면 아주 깊고 희열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상태는 최상의 평온감이며 환희에 가깝다.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의식세계에선 경험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대부분의 명상 방법은 여기서 그친다. 이것이 목적이며, 이것을 반복할 뿐이다.
위빠사나는 다르다. 다른 목표가 있는 것이다. 통찰지(awareness)이다. 통찰지에는 집중과 이완상태가 동시에 필요하나. 그것들은 필요한 예비단계, 필요한 도고, 그리고 이로운 결과물이다. 목표는 통찰이다. 위빠사나는 당신의 일상생활을 정화하고 변화시키는 깊은 종교적 광해이다. Chapter 14에서 집중과 통철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볼 것이다
오해#2: 명상은 몽환(trance)의 경지에 드는 것이다.
이말 역시 다른 명상세계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으나 위빠사나에는 맞지 않다. 통찰 명상은 체면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되기 위해 의식을 차단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식물인간으로 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당신의 감정적 변화에 대해 더욱더 민감해 질 것이다. 더욱더 깊이지는 명확함과 투명성으로 자신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과정 중 몽환 같은 지경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몽환과는 된다. 채면상태의 몽환은 대상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조절 받는다. 하지만, 깊은 명상 상태에서는 명상자가 자신을 잘 주도하고 있다. 비슷한 점은 외향적일뿐. 이미 말했듯이, 깊은 집중상태의 선정이란 통찰력으로 가는 도구이자 출발점이다. 위빠사나의 정의는 깨어있는 통찰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위빠사나에 의하면, 명상 중 의식이 없어지는 것 같으면 명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오해 #3 명상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관습이다.
역시 거의 맞는 말이다. 명상은 관념 밑에 깔려있는 의식세계에 관한다. 그러므로 명상에 대한 정보가 언어로 적절히 표현 안 될 수가 있다. 그렇다 고해서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어떻게 걸음을 걷는지는 안다. 하지만, 어느 근육이, 어느 신경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해는 가능하다. 명상도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다. 명상에 대해서 말로 설명하려 하지 마라. 경험을 해야 하는 것이다. 분별없거나 자동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정확히 언제 어떤 경험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 매번 조사, 실험, 그리고 모험이다. 매번 예측 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한다면 이 상태를 새로운 방향 지시기로 안다. 그것은 상태가 나뿐 경주로 빠졌고 어떤 일정한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알려 준다. 한시각 한 시각을 세상에서 처음 경험 하는 오직 하나 뿐인 순간으로 경험하는 것이 위빠사나의 핵심이다.
오해 #4: 명상의 목적은 신통력을 가지기 위해서다.
아니다. 명상의 목표는 통찰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아니다. 공중 부양(levitation)도 아니다. 자유가 목표다. 심리적 현상과 명상은 연관은 있으나 그 관계는 복잡하다. 명상초기에 심리적 현상은 일어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직관적인 이해력이 생기거나 전생을 보는 경우도 있다. 이것들은 신뢰 할 수 있거나 의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필요이상으로 중요시해도 안 된다. 이런 능력들은 매우 매혹적이기 때문에 초보 명상 자 에겐 위험물이기도 하다.
자아의 함정으로,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갈수도 있다. 이런 신통력들에겐 신경을 끄는 게 가장 좋다고 충고 하겠다. 만약 이런 것이 생긴다면 할 수 없다. 안 생긴다면 그것도 좋다. 안 생길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때가되면 명상 자가 특별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 특정한 연습을 할 때가 온다. 하지만 이것은 한참후의 일이다. 매우 깊은 선정 상태를 이룬 후에서야 명상 자는 신통력을 안전히 배울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다른 사람들만을 위해 신통력을 키울 것이다. 이 단계는 몇 십 년씩의 수행 후에 도달한다. 걱정 말아라. 단순히 통찰력을 키우는 것에만 집중해라. 환상이나 소리들이 들리면 그저 그것들을 인지하고 놓아버려라. 거기에 휩쓸리지 마라.
초의차명상원 www.teanm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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