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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3-0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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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기본 성질과 명상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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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2,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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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기본 성질과 명상 작용원리
나를 의식하는 기능이 어떻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 욕구 발생을 제어할 수 있는지 그 과정과 원리를 잠깐 살펴보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음은 실제로 대상과 함께 엄청 빠른 속도로 생겼다 사라진다. 쉽게 말해 끊임없이 변하고 흘러간다는 것이다. 보통의 의식으로는 생기면서 사라지는 모습이 파악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처럼 정신은 매 순간 흘러간다. 매 순간은 같을 수 없으며 매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고대 그리스의 한 철학자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을 했듯이 오직 변하고 있는, 흐르고 있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나중에 명상을 통해 알 수 있겠지만 그 흐름은 하나의 연속체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마음이 이어져 발생한다. 현대 과학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 방식이다. 형광등이 1초에 수십 번 깜박이고 있지만 우리는 그 깜박임을 알지 못한다. 마치 빛이 계속 이어져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신 작용은 그보다 수천 배 더 빠르게 깜박인다. 아주 강하고 날카로운 의식이 아니면 그 성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평상시는 그저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 생겼다 사라지는 과정 속에 여러 성질을 지닌 마음들이 작용해 우리의 의식을 만든다. 우리가 흔히 마음이라 부르고 정신이라 부르는 것은 무한히 빠르게 흐르고 생멸하는 정신 작용의 연속일 뿐이다. 거대한 강이 마치 하나의 줄기처럼 보일지라도 무수히 많은 개개의 물 분자의 연속인 것처럼 마음도 한순간 한순간의 연속체다.
또한 마음은 한순간 하나의 마음만 작용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주 작은 시간 동안에도 마음은 수백 번 생겼다 사라진다. 동시에 여러 마음 작용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한순간에는 하나의 마음만 있다. 우리가 미리 만들어 온 조건에 의해 매 순간 새로운 마음이 연속적으로 생긴다. 다양한 성질의 마음이 교차하면서 생기기 때문에 어떤 때는 동시에 두 기능을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작은 구리선 또는 광케이블 한 가닥으로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신호를 동시에 보낸다. 이때 신호들은 동시에 전달되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신호 사이와 사이 빈 시간과 공간을 이용해 신호를 보낸다. 동시에 전달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다. 마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기적인 정보처리 속도보다 몇 백 배 더 빠르기 때문에 가히 헤아려 알기가 불가능하다.
수대에 이르는 명상가들에 의해 마음은 극히 짧은 한순간 하나의 마음만 존재한다고 알려져 왔다. 그래서 훈련과 노력을 통해 마음이 일어나 존재하는 공간에 해롭고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는 대신에 유익하고 긍정적인 마음이 더 생기게 해야 한다.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 해롭거나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나 마음 공간에 아예 존재하지 못하도록 하고 욕구 발생을 야기하는 원천을 근본부터 차단한다.
이때 마음 공간을 해롭고 부정적인 것 대신 특정한 느낌과 이미지를 대상으로 하는 일관된 마음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방법이 있다. 기도나 염불, 집중력 중심 명상법들이 이 원리에 입각한다. 굳이 명상이 아니더라도 음악이나 미술 감상에 심취해 있거나 어떤 흥미 있는 대상과 쾌락적인 느낌에 빠져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마음이 잠시 어떤 대상에 몰입해 있어 나를 힘들게 하는 불안, 불만족, 공허감 등이 작용하지 않는 상태이다.
우리는 스포츠 경기나 영화, TV 드라마 등에 쉽게 매료 된다. 매료된다는 것은 그 순간만큼 나를 힘들게 하는 마음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을 끄는 대상이 내 마음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극단적인 경우는 술이나 마약 등의 힘을 빌려 힘든 마음의 상태를 회피하고 좋은 느낌에만 집착하는 일도 흔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 조건이 변하게 되면 언제든지 다시 부정적인 마음들이 일어나게 된다. 일시적으로 부정적인 정신 작용들을 막거나 회피했을 뿐이다. 그 근본 불안과 불만족의 원인을 제거한 것이 아니어서 기회가 다시 생기면 원래 상태대로 되돌아온다. 생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한다. 이 생각들을 막고 있으려면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된다.
통찰 명상은 이 생각의 흐름을 막지 않는다. 대신 중간 중간에 자각의 기능을 집어넣는다. 힘들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들 속에 자각하는 기능을 집어넣어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잘 알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이 자각의 기능을 강화시켜 그 순간 있는 그대로의 특징을 알게 한다. 이 방법은 생각을 막거나 회피해서가 아니라 직접 대면하여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마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이며 보다 더 근본적이다.
대상에 몰입된 마음이 아닌 있는 그대로 그 순간을 아는 마음을 지속적이고 강하게 만들어 내 보라. 얼핏 보거나 깊이 들여다보지 못해 몰랐던 사실을 점점 파악하게 된다. 책을 후루루 넘겨 버리면 책 속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림까지도 보기 어렵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겨보면 그림과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나를 보는 방식도 이와 비슷한 것이다. 더 오랫동안 자세히 보고 알게 되므로 나의 존재하는 특성과 모습에 익숙해져 간다.
나를 의식하고 아는 마음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를 올바로 보아 나가는 것은 물안경을 쓰고 물속을 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육안으로 물의 표면을 보면 자세히 물속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물안경을 쓰고 물속으로 들어가서 보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선명하게 물속이 보인다.
강하게 나를 아는 마음을 만들어 내는 것은 눈에 물안경을 쓰는 것과 같다. 그 힘과 능력으로 나를 통찰하는 것은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있는 그대로 왜곡과 편견 없이 자각하는 대상을 알게 되면 참안목이 생긴다. 이것을 지혜라고 한다. 이 지혜는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해 일으키는 여러 해로운 마음을 해소시키는 기능을 한다.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갈애와 그 이면의 불안, 불만족, 불완전함에 의해 비롯되는 마음의 동요는 제대로 보고 알아야만 해소되기 때문이다. 여기 담배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폐암에 걸려 죽은 사람의 폐를 보게 되면 한동안 담배에 대한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이처럼 참다운 모습을 알아 생기는 지혜는 우리 의식 깊숙이 박힌 습관과 관념을 바꾸거나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차명상에서는 궁극적으로 깊은 통찰을 통해 나를 이해하게 한다. 그 이해는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의 작용을 해소시켜 나간다고 했다. 예를 들어 다시 한번 부연 설명한다.
진주에 있는 모 공군 부대에 군종장교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잠시 부대 밖에 있는 암자에 거주지를 마련해 놓고 출퇴근을 한 적이 있다. 그 암자는 걸어서 30분 정도 등산을 해야 되는 곳에 있었다. 가끔 낮에 산길을 다니다 보면 살모사나 까치살모사 등 크고 독이 강한 뱀들을 보게 된다. 느릿느릿 지나가는 놈도 있고 똬리를 틀고 꼼짝도 안 하는 놈도 있다. 화들짝 놀라 잽싸게 도망가는 놈도 있다.
낮에는 피해 간다. 아니면 돌을 던져 뱀을 도망가게 한 후 지나다녔다. 문제는 가끔 밤에 산길을 오르게 될 때였다. 보통은 희미한 달빛이 있어 손전등 없이 나무 작대기만 들고 산길을 올랐다. 가다가 기다란 검은 형체를 보게 되면 정신이 바짝 긴장하게 된다. 모르고 무심코 밟고 지나가게 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아주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여 가며 길을 가게 된다. 기다란 검은 형체를 보면 당연히 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일단 작대기로 땅을 치게 된다. 땅에 울리는 소리를 듣고 어서 도망가라는 표시였다.
그런데도 간혹 아무 반응이 없을 때도 있다. 낮에 간혹 그런 경우를 만난 적이 있다. 뱀이 너무 여유가 있어서 그러는지 멀리서 돌을 던져도 아주 느긋하게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하루는 검은 물체를 보고 작대기로 땅을 몇 차례 쳤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작대기로 직접 건드려 보기로 했다. 벌떡 달려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의 마음이 밀려 왔다. 하지만 길을 가려면 별 도리가 없었다. 툭툭 건드렸으나 별 특이한 느낌이 오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더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구불구불하고 기다란 나무 막대기였다.
일단 뱀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은 순식간에 안심을 하게 됐다. 이런 경우 내가 뱀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 나의 마음은 긴장과 우려의 마음이 지배적이다. 아무리 생각으로 ‘저것은 분명 뱀이 아닐 거야’라고 수백 번 되뇐들 마음을 무겁게 하는 상태는 사라지지 않는다. 뱀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순식간에 마음속의 어둠은 가시게 된다.
집안 식구 중에 암으로 돌아가신 분이 있는 경우, 같은 부위가 아프면 혹시 나도 암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해 보고 큰 병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순간 마음이 개운해진다. 그때까지는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꼭 암 환자인 것처럼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이와 같은 경우는 믿고 훈련을 통해 마음의 두려움이 제거된 게 아니다. 정확히 보고 알았기 때문에 두려운 요소가 제거된 상태다. 평소 우리의 마음은 무수히 많은 형태의 갈망, 공포, 불안 등이 의식의 밑바닥에서 작용하고 있다. 이것들을 해소하기 위해 안으로 밖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또는 누군가를 찾아 마음속의 부정적 감정을 무시하려 든다.
훈련과 고행을 통해 일시적으로 제압해 보기도 한다. 믿음이라는 정신적 방패로 잠시 위안을 삼아 보기도 한다. 그리고 외부에 마음이 끌리는 대상이 있어서, 아니면 내부의 즐겁거나 쾌락적인 감정이 생겨 불안과 불만족의 상태를 잊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마치 그런 것들이 없는 것인 양 착각하고 살게 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혹은 재미있는 놀이나 운동을 하고 있을 때는 마치 자신이 본래부터 불안, 불만족, 공허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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