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애 스님,

편지 주어서 고맙습니다.
스님과 함께 여행하시는 두 분의 비구니 스님께서도 안녕하신지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오직 참선만 하는 수월한 수행을 하셨는데 지금은 제대로 수련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물론 새로운 방식의 수행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여행하며 수련하는 것도 살아있는 선이 아니겠습니까?
하와이는 아름다운 섬이며, 경치를 구경하실 때에는 경치를 즐길 뿐이시라구요? 오늘 아침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문답(問答)을 했는데 한 수도자에게 "선이란 무엇인가?"하고 물었더니 그의 첫마디가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 수행자는 마루 바닥을 치고는 "하늘은 파랗고 나무는 푸릅니다"라고 답했답니다. 이런 식으로 많은 답을 했습니다.

그 모든 답에 대해서 내가 "틀렸다"라고 했더니 결국 아무 대답을 못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자, 여기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바로 지금 네게 와서 '지금 뭐 하세요?' 하고 묻는다.
네가 '이 곳에서 참선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아이가 다시 묻는다. '그냥 참선만 하고 계신 거예요?' 너는 대답할 것이다. '아니다.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지.' 아이가 또 묻는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너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나는 스님과 함께 화두에 관해 선문답을 하고 있다.'" 이것이 올바르고 완전한 길이요, 대답입니다. 이것이 선입니다.
문답을 하는 동안은 문답을 하는 마음뿐이요, 밥을 먹을 때는 먹고 있는 마음뿐이며 운전을 할 때는 운전하는 마음뿐이고, 경치를 구경하는 동안은 구경하는 마음뿐인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보이는 경관이요, 보이는 경관이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만들지 말고 바로 들어가십시오.

두 분의 비구니 스님들에 관해서 그 분들의 행동이 "올바르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근본적으로는 옳고 그름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 옳고 그르다는 기준을 만들면 옳고 그름이 보이겠지요. 그러면 이미 스님은 마음 속에 있는 옳고 그름이 훌륭한 스승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아 불교에는 많은 종파가 있으며 그에 따라 다양한 스님들이 계시답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는 불교가 정착한지 매우 오래 되었을 뿐 아니라 불교의 전통이 널리 확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스님들은 자신이 가는 길이 옳은 것이라 믿고 있어서 그들의 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많은 스님들은 어릴 때부터 절에서 생활하셨기 때문에 생각의 폭이 때에 따라서는 매우 편협합니다.
스님에 따라서는 자신의 신분이 스님이라는 사실에, 자신들의 주장에 그리고 자신이 서열이 높은 스님이라는 사실에 강하게 연연할지도 모릅니다.(스님들 중에는 "올깎이"가 있는가 하면 "늦깎이"도 있습니다. "올깎이"스님의 경우 다소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며 그 자부심에 얽매일지도 모릅니다.)
참선 외에도 불교에는 많은 종류의 수행이 있답니다.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경전 수행, 염불 수행, 의식(儀式)수행 등이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많은 스님들이 행하는 수행의 방법도 모두 다릅니다.

그 분들의 본래 소임은 "중생을 제도하는 것"으로 모두 같지만 외형적으로는 수행의 방법이나 사찰에서의 소임이 모두 다릅니다.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은 그 일의 형태와 기능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님들 중에는 교직에 계셨던 분들도 계셔서 그분들의 법문은 마치 "교수님이 하시는 수업"같답니다. 물론 스님들 중에는 회사원이었던 스님들, 자신의 일만 열심히 했던 스님들, 사업을 하셨던 분들, 예술가였던 분들, 의사였던 분들, 그 외에도 여러 종류의 직업을 가지고 계시던 스님들이 계십니다.
일단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면 이미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고행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이전의 직업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회사원이셨던 스님은 그저 염불할 뿐이고, 선방의 수좌들은 오로지 참선 수행을 할 뿐입니다.

벽조 스님은 한국에 계신 제 도반 중 한 분인데 그 분이 하는 일이라고는 머물고 있는 절에서부터 산 능선을 따라 돌계단을 놓는 일뿐이랍니다.
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 분은 날마다 그 힘든 일을 혼자서 하신답니다. 그렇게 공을 들인 결과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 계단을 이용해서 쉽고, 안전하게 절로 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단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절로 가는 길은 험했으며 때로는 위험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쉬워진 것이죠.
그 스님이 겉으로 보인 모습은 염불승이나 수좌들과는 달라 보일지는 몰라도 그 내면에 깃들여 있는 정신은 모두 똑같은 것입니다.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마음이지요. 스님들 모두 저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다르게 마련입니다.
처음 승려가 되었을 때는 최소한 5년 동안은 절에서 머물며 수행해야 합니다.
사사로운 의견이나 상황을 모두 떨쳐 버리고, 오로지 다른 이들과 함께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한 사람을 승려로 키워내는 중요한 전통입니다. 그리고 이 이후에 연륜이 더함에 따라 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을 합니다.
따라서 연륜이 어느 정도 차고 나면 함께 수행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지 않습니다. 스님들마다 행동양식이 조금씩 다르니 때때로 이견을 보이고, 논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한국의 불교가 그렇습니다. 물론 아시아 지역에 있는 여타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 가면 제가 드린 말씀을 더 많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한국에 가면 이런 의문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저기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분도 스님이세요? 저 분은 매일 아침마다 백팔배를 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그저 종무소(宗務所)에서 일을 하실 뿐인데도 말입니까?"
오로지 선불교와 참선 수행만을 이해하고 계신다면 다른 종파의 불교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 모두 나름대로 자신이 올바른 승려이며, 올바르게 수련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불교에는 8만 4천가지의 경전이 있는데,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업을 가지고,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많은 경전을 어느 하나라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법당으로 들어가는 데는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정문을 통해 들어갈 수도 있고 부엌문을 지나 들어갈 수도 있으며 현관문을 통해 갈수도 있고, 창문을 통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지나가는 문이 모두들 다르지요.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모두 똑같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 법당으로 들어가려는 것이지요.
창문을 타고 넘어 들어간다는 것이 혹자에게는 이상하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아예 들어가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그러니 문(門)이라는 것이 옳게 쓰이고자 한다면 옳은 문과 그른 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불교란 무엇입니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어떻게 지키십니까?
그에 대한 답은 어떤 스님이든 모두 똑같습니다. 저마다 자신만의 문을 따로 가지고 있지만 그 문들 중 어느 하나는 법당으로 가장 빠르게, 지름길로 갈 수 있는 문일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너희가 보살심을 간직한다면 어느 곳에 가더라도 행복을 얻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떤 것도 굳이 확인하려 들지 마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무애 스님과 같이 계신 두 분의 비구니 스님들 간에 벽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무애 스님의 생각에는 옳다고 여겨지든, 그르다고 여겨지든 간에 두 분의 행동은 이미 무애 스님에게 진실된 길을 보여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혼자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면 항상 문제에 부닥칠 것입니다.
무애 스님은 아직은 연륜이 짧은 비구니이십니다.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기와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점을 기억하시고 지금 하고 계신 수련으로 이기적인 고집, 이기적인 상황, 아전인수식의 생각을 모두 떨쳐버리십시오.
그러면 두 스님을 도울 수 있을 것이며 중생을 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행동을 "옳다"거나 "그르다"고 하지 마시고, "이것은 고된 수행이다"라는 생각도 마시고, "이것이 올바른 길이다"라는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그저 솔직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빈 공간과 같이 청정한 마음을 지킨다면 곧 깨달음을 얻을 것이며 삶과 죽음이라는 대업도 이룰 것이고, 번뇌하는 중생을 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숭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