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던에게,

편지 보내주어서 고맙다. 이젠 좀 어떠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니 애도를 표한다.

오래 전 중국의 위대한 스승이신 남전 선사가 돌아가셨을 때 그 분의 제자들과 그 분을 아는 모든 이들은 매우 슬퍼했다. 당시의 풍습은 고인의 집으로 가서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哭)을 하는 것이었지만 남전 스님이 가장 아끼시던 속가(俗家)제자였던 부대사(傅大士)는 스승의 부고를 듣고는 남전 스님이 주석하셨던 절로 가서 문을 열어 젖힌 뒤 관 앞에 서서 "하, 하, 하, 하!"하며 박장 대소를 하였다.

남전 스님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 저릐 주지 스님이 물었다. "너는 큰 스님이 가장 아끼던 제자이거늘 스승이 돌아가셔서 모든 이들이 슬퍼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웃느냐?"
"스승께서 돌아가셨다고 하는 데 그럼 어디로 가셨단 말입니까?"
주지 스님은 대답을 못했다.
부대사는 그제야 울기 시작했다.
"제 스승이 가신 곳을 모르신다니 너무 슬픕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무슨 뜻이 담긴 것이지?
네가 답할 수 없다면 나는 슬프구나.

선이란 생사의 대업을 깨닫는 것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그 이치를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이 명확할 것이요. 완벽할 것이며 자유로울 것이다. 여기 물 한 컵이 있다고 하자. 그 물의 온도는 약 20도인데 만일 그 온도를 네가 0도까지 낮춘다면 그 물은 얼 것이다. 다시 온도를 100도까지 높이면 수증기가 되겠지. 온도가 변함에 따라 물을 이루고 있는 H②O라는 분자가 여러 형태로 움직이는 것이지. 하지만 H②O 그 자체는 나타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다. 얼음과 물 그리고 수증기는 그저 형태일 뿐이다. 이름과 형태는 변하지만 H②O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온도가 몇도 인지 않다면 그 형태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너의 진정한 자아란 이와 같다.

너의 진실한 자아란 무엇인가? 육체는 삶과 죽음을 가지고 있지만 진정한 자아란 그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일 그대가 "내 몸아 바로 나야"하고 생각한다면 틀린 것이다. 뭔가에 홀린 것이다. 이제 깨어나라!
수증기와 얼음, 그리고 물이 모두 H②O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네가 "물"이라는 것에 얽매인다면 그 물이 얼었을 때 "물"이 사라졌다고 말할 것이다. 그 물은 그렇게 죽은 것이야! 온도를 올리면 그 물은 다시 태어나지! 하지만 온도를 너무 올리면 물은 다시 사라지고 수증기가 나타난다. 물은 다시 죽은 것이야|!
이런 현상은 선원(禪圓)의 0도에서 90도까지의 영역에 해당한다. 네가 무언가에 얽매인다면 그것은 사라지고 너는 고통받게 된다. 오로지 네가 좋아하는 것에만 얽매인다 해도 고통받기는 마찬가지지. 단지 "물"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마라. 알겠니? 물에 집착하는 것은 다만 그 이름과 형태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름과 형태는 항상 변하고 쉼 없이 변하는 것이니 이름과 형태가 모두 덧없지 않느냐? 다른 말로하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
이것을 이해한다면 선원에서 09도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이름과 형태를 만드는 것은 생각이다.
물은 "내가 물이요"라고 말하지 않고, 수증기도 "나는 수증기요"라고 말하지 않으니 네가 모든 생각을 떨쳐 버린다면 너와 "물"이라는 것이 같은 것이냐, 아니면 다른 것이냐? 같다거나 다르다는 것도 네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선원에서 180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말을 하는 그 순간 너는 이미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모든 생각을 떨쳐 버린다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 생각도 없다면 물은 물이요, 얼음은 얼음이며, 수증기는 수증기일 뿐이다. 아무 것도 거치적거릴 것이 없게 되지. 그제야 모든 형태의 H②O와 네 자신의 관계가 있는 그대로 보일 것이다. 이것은 선원에서 360도의 경지이다. 이런 경지를 "여여(如如)"하다고 말한다. 여여한 마음은 맑은 마음(淸淨心)이다. 이 청정심을 지닌다면 너와 H②O의 올바른 관계를 알 수 있고 이기적인 생각없이 자유롭게 그 이치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물이 사라져 얼음이 되든 수증기가 되든, 너는 고통받지 않을 것이다.
네 아버지의 본래 육체에는 삶도 죽음도 없단다. 그 분의 육체는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그의 법신(法身)은 나타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네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 깨달음은 곧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기도 하다. 그 깨달음으로 너는 대자 대비한 마음과 위대한 보살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말을 단순하게 믿지 말고 참으로 깨달아야 한다. "오직 모를 뿐"이란 마음으로 바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정진하고 정진하며 또 정진하여 아버지의 원래 얼굴을 되찾고, 깨달음을 얻어 번뇌에 빠진 중생을 제도하기를 빈다.

숭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