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에게,

몸은 어떠니? 편지 잘 받아 보았다.
네가 음식을 주는 대로만 먹어야 하고, 어떤 행동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그리고 육체적으로는 모든 이들에게 의지하고 있으니 정신만은 자유롭다고 말했지?
훌륭하구나. "병을 앓고 있는 동안은 다만 앓으라"는 것이 바로 병중의 올바른 참선 수행법이다. 어쩔 수 없다 해도 그 어떤 것도 확인하려 하지 말 것이며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앓아라. 그러면 아픔은 아픔이 아니라 고도의 수련이며 고도의 교육이다.

부설 거사의 이야기를 알고 있니? 부설거사는 원래 스님이었는데 다른 두 명의 스님들과 3년간 은둔 생활을 하려 했다. 하지만 도반들과 입산하던 길에 그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인즉 이렇다. 한 처녀가 그들의 뒤를 재빨리 따라와서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결혼하지 못한다면 자결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설거사는 보살행을 실천하기 위해 그녀와 결혼을 했다.

그러자 그와 함께 수행하기로 했던 스님들이 "자네 마음은 욕망으로 가득하니 그것은 보살행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렇게 부설거사를 나무란 뒤 입산하는 길을 재촉했다.
부설 거사는 결혼한 후에 큰 병을 앓아 지금의 너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아내는 그를 매우 극진히 보살폈단다. 그의 몸을 닦아주고 음식을 만들어 주었지. 그는 3년 동안 날마다 병석에 누워 천장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부설 거사를 외면했던 두 스님이 3년간의 은둔 생활을 마친 뒤 같이 수행하기로 했던 부설 거사 생각이 나서 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들이 부설 거사의 집을 찾았을 때 그의 아내는 앞뜰을 쓸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부설거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남편은 3년간 병을 앓았습니다. 지금은 병환이 너무 심해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난 그들은 속으로 부설 거사를 비웃었다. "업보로구나. 계율을 어기고 결혼을 하더니 3년이나 앓게 된 게야." 하지만 그들은 동고동락했던 도반을 보고 싶어 잠시나마 그를 볼 수 있겠냐고 부설의 아내에게 물었다. 사실 부설 거사의 아내는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았지만 친절하게 그들을 남편이 누워있는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러자 두 스님은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3년 동안이나 병을 앓았다구? 나빠 보이지는 않는구먼!"
부설 거사는 두 도반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오! 잘 있었나? 이렇게 찾아주어서 고맙네."

두 스님이 놀라서 물었다. "3년 동안이나 병석에 누워 있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일어났나?" "아마도 자네들이 3년동안 열심히 수행한 덕택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네." "그럴지도 모르겠네. 우리는 매일 자네 걱정을 했거든."
"내게 어찌나 많은 업보가 있었던지 3년 동안 병을 앓았지 뭔가. 하지만 자네들은 그동안 열심히 수행을 했겠지? 그래 무엇을 위해 수행하였는가? 가르쳐 주겠나. 무엇을 깨달았는가?" "아주 많은 경전과 훌륭한 스승들의 말씀을 읽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깨달았네." 그 후 여러 시간 동안 그들은 부설 거사에게 자신들이 깨달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부설거사가 이렇게 물었다. "자네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아주 훌륭하게 깨달았군. 그렇다면 부처의 마음은 무엇인가?"
"부처의 마음이라구?"
"그래 부처의 마음이 무엇인가 말 일세?"
"자네는 아는가?"
"글쎄, 만일 자네들이 부처의 마음을 깨닫고 얻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걸세. 그럼 한 번 해볼까?"
부설 거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내를 불러 자신을 도와 달라고 했다. 그의 아내는 목이 가늘고 밑이 넓은 세 개의 병에 물을 가득 채워 들고 왔다.

부설거사는 끈 세가닥을 꺼내 각자의 물병의 목 부위를 묶고는 그 줄의 끝을 따로따로 벽에 걸었다. 그리고 망치를 들고 와서 도반들에게 말했다.
"여기 망치가 있네. 자네들이 망치로 물병을 쳐서 그 물이 바닥에 쏟아지지 않는다면 부처의 마음을 얻은 것일게야. 해보지 않겠나?" 부설의 두 도반은 멈칫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요, 만일 시도한다면 실패할 것이 분명했다. 하는 수없이 그들은 부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선 염불 수행을 했던 한 스님이 망치로 병을 쳤다. 그러자 물은 모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변에는 경전에 통달했다는 스님이 망치로 다음 물병을 쳤다. 결과는 똑같았다. 마지막으로 부설거사의 차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망치를 쓰지 않고 물병을 가리키며 "할!"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대포소리 같았다. 이미 물은 쏟은 두 스님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물병은 깨져 바닥으로 떨어졌으나 물은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두 스님은 바닥에 엎드려 부설 거사에게 절을 했다.
"미안하네. 아무쪼록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시게!" 부설 거사는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자네들을 가르칠 수 없네. 자네들은 이미 모든 것을 얻었네. 하지만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네. 그것을 찾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일세." 그렇게 말하고는 아직 물병 모양으로 남아 있는 물을 들어 방문 밖으로 버렸다. 이것이 부설 거사의 이야기란다.


병을 앓고 있을 때는 오로지 앓아라. 그러면 모든 것을 얻을 것이요,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이미 지금의 병이 커다란 가르침을 주었다고 말했으니 훌륭하구나. 그러면 내가 물어보마.
네 병과 부설거사의 병환은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만일 같다고 대답한다면 눈을 감고도 별을 볼 수 있을 것이요, 다르다고 답한다면 너는 이미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지옥에 갇혀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숭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