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에게,

편지 보내주어서 고맙구나. 어떻게 지내느냐?
이제 네 상황과 정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구나.나도 너의 어릴 적 추억과 비슷한 경험을 했단다. 한국에서는 풀을 베어서 퇴비를 만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어린이들이 낫을 가지고 풀을 베러 다니는 게 일과였다. 내가 여덟 살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나와 내 친구들은 밖에 나가 풀을 베어 자루에 가득 담아 다 함께 학교로 갔다. 학교로 가는 길에 한 친구가 나에게 "너, 다리 베었구나!" 하고 말하기에 다리를 보았더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피가 많이 흘렀는지 걸을 때마다 고무신에서 "뽁뽁" 소리가 났단다. 고무신에서 새어 나오는 피를 보자마자 나는 갑자기 다리가 마비되는 것 같아 털썩 땅바닥에 주저앉아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우르르 내 주위로 몰려들었고, 한편에선 어머니를 부르러 갔고 또 다른 한편에선 나를 들쳐업고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는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아픔도 느끼지 못한 채 즐거운 마음으로 시오리나 되는 거리를 걸은 후에야 피가 나고 있는 다리를 보았던 거지. 나에게 뭔가 무제가 있었던 것이다. 베인 상처 때문이 아니라 그 상처를 확인하고 확인 후 아프다는 감정을 만들어낸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확인하기 전의 마음을 직심(直心)이라고 말하는데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확인하고 나면 어떤 감정과 이기적인 생각 그리고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지. 피가 나고 있는 다리를 보고는 통증을 느꼈지만 보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상처를 보았기 때문에 주저앉아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네가 지붕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는 직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네가 얼마나 높이 올랐는지 확인하고 나서는 겁에 질려 꼼짝 할 수 없어서 "어떻게 내려가지?" 하고 걱정을 했던 것이지.


삶이란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두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누구도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고 말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 모든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그 위험이란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 환상일 뿐이다. 네가 위험을 느꼈을 때 움직일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만물은 그 이름과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이름이나 형태란 모두 덧없는 것이다. 그러한 이치를 깨닫는다면 그 어떤 것에도 이름이나 형태는 따로 있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름도 형태도 실제로 없는 것이라는 이치를 깨달았다는 것은 너의 마음이 이미 맑은 거울과 같고, 움직이지 않는 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아무 문제 없이 여러 가지 색을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무엇을 고집하거나 만들어 내거나 그것에 연연한다면 네 마음의 거울은 이미 더러워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못하게 된다. 네가 청정심을 갖는다면 네 마음은 텅 비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있을 것이다. 붉은 색을 비추면 붉게 보일 것이요, 하얀 것을 비추면 하얗게 보일 것이니 말이다. 누군가 슬퍼한다면 나도 슬플 것이오, 누군가 행복해한다면 나도 행복한 것이다. 이것을 방해받지 않는, 완전한 자유라고 한다. 그러니 "나" 라는 생각을 버리고 어떤 것도 만들지 말 것이며, 고집하지도 말고 연연하지도 말라. "오직 모를 뿐"이란 마음으로 바로 들어가라.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은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질병도 고쳐 줄 것이다.

모든 이들을 번뇌로부터 제도하고 싶다고 했지? 가능한 일이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은 대자대비한 마음이요, 보살의 마음이다. 이미 어떤 길을 가야 하는 지는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하지만 진정 다른 이들을 돕고 싶다면 우선 자신의 업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단다. 혼자서 수행하는 것을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렇게 하면 가끔 씩 네 업이 나타나,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다스릴 수 없게 된다. 그럴 경우 올바른 길을 지킬 수 없고 꾸준히 참선 수행하는 것도 불가능해 진단다. 스스로의 업과 행동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선원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 절하며, 경전을 독송하고 참선한다. 네가 선원에서 수련한다면 더 이상 자신의 생각과 상황 그리고 처지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요, 이기적인 업은 사라질 것이다. "오직 모를 뿐"이란 마음으로 정진하길 바란다. 그리고 선원에서 도반들과 더불어 생활하길 바란다. 알겠니? 그러면 네 업은 깨끗해질 것이다. 업을 맑게 한다는 것은 올바른 주장, 올바른 상황, 올바른 처지 그리고 영속적인 보살심을 깨닫게 되는 것을 뜻한다. 네가 음악을 좋아한다면 음악에 힘쓰거라. 그러면 너의 음악이 모든 이들을 구제할 것이다. "오직 모를 뿐"이란 마음으로 업을 깨끗이 하고 득도하여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제도하기를 빈다.

숭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