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교수님,

편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군요.
법문을 위해 오랫동안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한국에 돌아와 있습니다.
보내주신 편지는 제가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답장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처님께 재를 털면]을 여덟 번이나 읽으셨고, 그 책이 맘에 드신다 구요?
게다가 그 책이 서양에서 출판된 선에 관한 책들 가운데 최고의 책에 든다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책은 가장 "사악한" 책인지 모릅니다.
쓰레기통에 버리십시오! 어떤 책이든 너무 많이 읽는다면 그래서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면 그 책이든 성경이든, 어떤 종류의 책이든 당신을 죽도록 괴롭힐 것입니다.
왜 한 권의 책을 여덟 번이나 읽으십니까?
아무리 그 책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쓴 책이 당신에게 문제를 일으킨 것 같아 죄송할 뿐입니다. 한 번만 읽으십시오.
그라고 "오직 모를 뿐" 이라는 마음으로 바로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 어떤 책을 여러 번 읽는 것보다 나은 길입니다.

몇 가지 질문을 하셨는데 제 답은 이렇습니다.

1. 그걸 모르십니까! 저는 "오직 모를 뿐" 이란 마음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제 스승께서 만든 것도 아닙니다. 더욱이 부처님께서도 그것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교수님께서 만든 것입니다. 그 것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교수님께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선에서 말하는 "오직 모를 뿐" 이란 마음은 교수님께서 만든 그 마음이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교수님께서 만든 그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지 마세요. 또 그러한 마음을 만들지도 마세요. 어떤 것도 인위적으로 만들지 마세요.
그러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2. 선이 오직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맞는 말입니다.
당신의 진정한 자아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이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당신의 진아(眞我)이니 말입니다.
당신의 진아가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진아를 찾는다면 위대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위대한 길이란 위대한 사랑이요, 중생을 위하는 보살입니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를 초월한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가 되고 하나는 많은 사람이 되니 그것이 위대한 사랑이며, 진정한 선이고, 당신의 진정한 자아이며, 진실한 사랑입니다.

3. 제가 두루 다니면서 설법을 한다고 하셨죠. 제자들이 내가 찾아가기를 원하니 오직 그 이유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는 선사들은 그리 좋은 스승이 못됩니다. 참된 선사라면 한 곳에 머물 것이며, 모든 이들이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겠지요. 그런 이유로 저는 매우 낮은 경지에 있는 스승입니다.
원해 훌륭한 참선 수행자들은 그들의 위대한 스승을 고작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한 채 자신들이 머무는 토굴에서 사람에 따라서는 6년, 8년 또는 10년동안 면벽 참선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수행끝에 깨달음을 얻으면 다시 스승을 찾아가 시험을 보고, 새로운 가르침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인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수행자들이 스승을 너무 그리워하고 설법을 듣기를 원하며, 선문답을 나누고자 합니다. 만일 당신이 갖고 계신 위대한 믿음, 위대한 용기, 위대한 의문이 강건하다면 이렇게 저와 문답을 주고받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할 것입니다.
제 말은, 교수님의 "오직 모를 뿐" 이란 마음이 확고하다면 그 마음이야말로 어떤 위대한 선사들이나 부처, 여타의 신들보다도 더 훌륭하다는 뜻입니다.
저를 이미 한 번은 만나셨으니 이제는 충분합니다. 만일 또 다른 만남을 원한다면 그것은 낮은 근기의 수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제 책을 계속 되풀이해서 읽는다면 그것은 더욱 더 낮은 수준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오직 모를 뿐" 이라는 마음을 잃지 마십시오.

4. 저는 한국의 승려입니다. 한국의 유서 깊은 불교적 전통을 배워왔습니다.
한국의 사찰에는 많은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이 있는데, 그들은 독신 수행의 계율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 승단을 만든 이후 제자들이 그 청정한 계율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출가 수행자는 원래 결혼을 하여 가족을 꾸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 스님들은 대부분 독신이 아니며 따라서 전통적인 의미의 스님들은 아니지요. 그들은 부처님이 정하신 계율을 따르지 않으므로 여는 불가의 전통과는 단절되어 있는 것입니다.
대처를 하는 것은 일본 스님들의 전통일 뿐입니다. 한국도 조계종단 이외의 종단은 거의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만 이는 20세기 초에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불교는 완벽했으며 모든 스님들은 불교의 고유한 전통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한국 스님들은 결혼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불교를 파괴한 것입니다.
일본의 식민 정부는 결혼을 하지 않는 승려들은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 스님들은 어떤 사찰의 주지 스님이 될 수도 없었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재정적인 도움도 전혀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아주 힘든 시기였죠. 그래서 한국의 많은 스님들은 강제로 결혼을 했으며 육식, 음주 등을 금하는 승가의 계율을 어기게 되었습니다. 결국 가정을 갖게 된 많은 스님들은 가족을 부양할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찰은 마치 식당과 같이 변해버렸습니다.
절에서 춤추고 음악을 즐기며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일도 공공연해진 것입니다.
사찰은 대개 눈에 잘 띄지 않는 산중에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스님들은 자신의 가족들이 거처할 수 있는 집을 사찰 부근에 짓거나 아예 사찰 안에서 가족들과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승려들은 아침에는 자신의 집에서 참선을 하고, 낮에는 식당으로 변해 버린 사찰에서 돈을 벌었습니다. 심지어는 가족들에 관한 일이나 돈을 벌기 위해 아예 참선 수행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인들은 모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고, 마침내 한국불교의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계율대로 독신 수행을 해왔던 비구 스님과 대처승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당신들은 일본식으로 변절한 승려들이오." 계율을 지키지 못했으니 당장 절을 떠나시오!" 그 당시 한국에는 대처승이 약 7천 명 정도 있었고, 청정 비구승은 6천 명정도였습니다. 비구승이 대처승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비구승들은 일본불교에 완강히 저항해 온, 유일한 사찰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사찰이 바로 수덕사입니다. 수덕사는 제가 출가하여 수행했던 곳으로 제 스승 또한 그 곳에서 수행하셨고, 그 분의 스승이셨던 만공 스님과 만공 스님의 스승이셨던 경허 스님도 그 곳에서 수행하시 고찰입니다.
비록 대처승들이 늘어났고, 그러한 승려들이 모두 재력과 사찰을 갖고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불교 고유의 전통을 알고 있었기에 비구 스님들을 존경했으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비구와 대처의 분규는 15년간 계속 되었는데 결국 일대 변혁이 일어나 대처승들은 모두 조계종에서 퇴출되어 그들만의 종단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조계종에는 일만 오천명 이상의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이 계신데 그들은 계율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울러 조계종은 한국에서 가장 큰 종단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구사회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출가하여 스님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성관계를 원하거나 결혼을 원하면 서양에서의 조계종(관음종)의 전통에 따라 출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비구로서의 청정한 계율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은 오계(五戒)를 받은 뒤 포교사로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평신도들도 포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잘 된 일이지요.
미국에 있는 일본 스님의 문하생들은 이성 친구를 가질 수도 있고, 결혼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전통이니까요.
본질적으로 계율이나 승(僧), 속(俗)이 특별한 것은 아니며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만약 올바른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계율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마음의 어떤 계율도 지키려 하지 않는다면, 또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일념이 없다면 계율도 필요 없고 부처도 필요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5. 불가의 계율 또는 청규(淸規)에 관해 말씀드립니다.
교수님은 내가 그런 규정을 만들었다고 하시면서 "완전한 자유"를 얻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셨지요? 우매한 질문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만들지 않습니다. 만들었다면 교수님이 만드신 것이겠지요.
하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니 설명하겠습니다.
우리의 몸은 많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에는 여섯 명의 강도들 (六根)이 있는데, 그들은 항상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좀먹고 있습니다. 그 여섯 명의 강도란 눈과 귀, 코, 혀, 몸과 의식입니다. 이 여섯 강도들은 도무지 배불러할 줄을 모릅니다. 만일 우리라 좋은 여건에 놓여 있다 해도 그들은 더 나은 여건을 원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나쁜 여건에 놓여 있으면 그 여건을 달갑지 않게 여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것이 싫어! 나는 이런 여건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단 말이야!" 만일 당신이 마음의 중심을 굳게 다지지 못하면 그 여섯 강도에게 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제나 만족할 수 없을 것이요, 때로는 너무나 혼란스러울 것이며 이미 당신의 진정한 자아를 "잃어 버린"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근기가 강하다면 이 육근이 제 아무리 많은 욕망과 분노와 무지를 갖는다 해도 당신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일상이 항상 청정할 것이요, 올바를 것이니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제가 사찰의 규칙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저는 아무 것도 만들지 않았으며 그 어떤 것도 저에게는 특별히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짖어대는 개,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푸른 나무들이 차라리 저보다 부처님보다 그 어떤 것들보다도 훌륭한 스승일 것입니다. 자연이란 이미 그 자신의 법칙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어느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만물은 자연 속에서 그 법칙을 따르고 조화를 이룹니다.
하지만 인간들이란 자연과는 다르죠.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의 본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항상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하늘은 파랗고, 숲은 푸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욕망과 분노와 무지함을 보물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우리에게 진실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모든 이들은 자신만의 주장이 너무나 강하고 자신만 깨닫고 있는 것이 너무 많으며, 자신의 감정을 너무 자주 확인하려 듭니다. 그러니 그들이 여섯 강도들에게 도둑질당하는 것을 즐기지 않겠습니까?
불교의 계율은 이래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올바른 입장을 견지한다면 계율 같은 것은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많은 교훈과 청규와 가르침이 오직 당신을 위한 것이니 아마 당신의 몸에 있는 여섯 강도들은 이 규칙이 나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진정한 자아는 그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는 이 규칙이나 가르침이 여섯 명의 강도를 자신의 훌륭한 친구로 바꾸어주기 때문입니다.
몸이 그 도둑들을 싫어하는 것과 진정한 자아가 그들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 중 어느 것이 마음에 드십니까?
철학을 가르친다고 하셨지요? 그럼 묻겠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명성입니까?
음식입니까?
가족입니까?

이것들이 모두 중요할 것이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만일 내일 당신이 죽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돈이 필요합니까? 명성이 필요합니까? 음식이 필요합니까? 가족이 필요합니까? 그래서 묻는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했는데 만약 인간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찌 되는 것입니까? 다시 말해 당신은 누구입니까?
말해 주세요. 말해 주세요!

그 답을 아신다면 당신은 매우 고등한 동물이겠지만 만일 모른다면 개나 고양이보다 나을 게 없을 것입니다. 개나 고양이는 그들의 본능을 알고 있으며 항상 자신들의 본능에 따라 움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많은 것을 이해하고, 많은 지적인 욕망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교수님께서 답을 구하셨다면 저에게 꼭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오직 모를 뿐" 이라는 청정심으로 이기적인 "나"를 떨쳐 버리고, 진정한 "나"를 찾아 깨달음을 얻어, 번뇌하고 있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숭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