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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5-26 18:32
[인천] 보문사
 글쓴이 : 사찰넷
조회 : 7,600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 낙가산에 있는 사찰.
강화도 서쪽의 석모도에 있다.
양양낙산사와 금산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도량이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이 곳에 와서 절을 창건하였는데,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산의 이름을 낙가산이라고 하였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절의 이름을 보문사라고 하였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한 어부가 바다에 그물을 던졌는데, 사람 모양의 돌덩이 22개가 한꺼번에 그물에 걸렸다. 고기를 잡지 못해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를 바다에 버린다. 다시 그물을 쳤는데 또 다시 바로 그 돌덩이들이 걸리게 되자, 어부는 또 다시 그 돌덩이를 바다에 버렸고, 돌이 두번이나 그물에 걸리게 되자 그만 집으로 돌아간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낮에 그물에 걸렸던 돌덩이는 천축국에서 보내온 귀중한 불상인데, 바다에 두번이나 버렸다고 질책하고, 내일 다시 그곳에서 불상을 건져서 명산에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 날, 23개의 불상을 건져올린 어부는 꿈 속에서 노승이 당부한 대로 낙가산으로 불상을 옮겼는데, 현재의 보문사석굴 앞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불상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 옮길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석굴이 불상을 안치할 신령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하고, 굴 안에 단을 만들어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 깨어진 옥등잔 전설

옛날에, 보문사의 어린 사미승이 부처님께 등공양을 하기 위해 법당에 들어갔다. 나한전에는 보문사에 전해내려오는 귀중한 보물인 옥등잔이 있었는데, 사미승은 옥등잔에 기름을 부으러 가는 것이다.
사미승은 옥등잔을 내리고, 등잔에 기름을 붓다가 실수로 등잔을 떨어뜨리게 된다. 떨어진 옥등잔은 두조각이 나게 되고, 사미승은 혼비백산하여 법당을 빠져나와 구석에 주저앉아 훌쩍이게 된다.
마침 지나던 노스님이 사미승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슨일인지 물어보자, 사미승은 옥등잔을 깨게 된 일을말하게 된다.
사미승과 노스님은 깨진 옥등잔이 있는 나한전으로 들어갔는데, 두동강난 옥등잔은 멀쩡히 불빛만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상히 여긴 노스님은 옥등잔을 자세히 살펴 보았지만, 깨진 흔적조차 없이 멀쩡하였다. 이에 노스님은 "이것은 분명 나한의 신통력 때문이로다" 하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보문사 극락보전 (아미타전)
극락전 혹은 극락보전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이시며 중생들의 왕생극락을 인도하시는 아미타부처님과 그 협시보살들을 모신 법당이다. 사찰에 따라서 미타전, 아미타전, 무량수전, 수광전이라고도 하는데, 낙가산 보문사에서는 큰법당으로서 많은 불자들의 귀의처가 되고 있다.
극락보전의 부처님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부처님과 그분의 협시보살로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혹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모셔진다. 일찍이 아미타부처님이 법장비구로 수행하던 시절에 그 유명한 48대원을 세워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모든 것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건설하셨다고 한다. 그때 세웠던 서원에 따라 누구나 일념으로 ‘아미타불’이란 명호만을 불러도 극락에 왕생시켜 괴로움을 물리치고 불도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대자대비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아미타불신앙은 예로부터 사후신앙과 관련하여 서민들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아 왔다. 따라서 전국의 사찰에는 아미타부처님이 석가모니부처님 다음으로 많이 모셔져 있다. 아미타부처님은 설법인을 취하고 있거나 미타정인(九品印)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수인을 하고 계신다.
극락보전의 후불탱화
극락전의 후불탱화에는 주존이 설법인이나 미타정인을 취한 아미타부처님이며 좌우 협시보살로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혹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배치된다. 보문사의 극락보전은 협시보살로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그런데 아미타불탱화는 석가모니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의 주존상과 협시보살만 다를 뿐 대웅전의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통례이다. 왜냐하면 아미타신앙은 『정토 3부경』에 의한 신앙인데, 이 경전들을 설하신 분이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이고 듣는 이가 『법화경』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중이기 때문이다.
보문사극락보전은 동양 최고의 관음기도도량답게 수많은 불자님들의 염원을 담아서 스님들의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나한전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 혹은 500나한상을 모신 전각이다. 우리나라의 나한전 가운데 500나한을 모신 곳으로는 경주 기림사 나한전, 영천 은해사 거조암, 전주 송광사 나한전 등이 유명하다. 보문사의 석굴나한전은 다른 곳과는 달리 18나한님을 모신 곳으로 유명하다. 설화 속에서 알 수 있듯이 보문사석실의 나한님들은 중생을 구제하기위하여 먼곳으로부터 나투신 부처님의 제자들로서 많은 불자들의 귀의처가 되고 있다.
나한전의 부처님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시기 위한 전각이지만 그분들은 모두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이므로 주존으로는 영산전에서와 같이 석가모니부처님을 위시하여 협시보살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을 모신다. 말하자면 과거불인 정광여래의 화신 제화갈라보살과 현재불인 석가모니부처님 및 미래불인 미륵보살을 모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상징하고 그 좌우로 8위씩 16나한을 모시거나 500나한을 모시는 것이다.
‘나한’이란
인도의 옛말 아르하트에서 온 말로 아라한 또는 줄여서 나한이라고 하는데 뜻으로 옮겨 ‘응공, 무학, 응진’이라고도 한다. 본래는 존경받을 만한 분, 공양받을 만한 분이라는 의미로 석가모니부처님도 처음에는‘아라한’이라 불렸다 한다. 특히 초기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수행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 곧 현실의 모든 번뇌와 고통을 여읜 해탈의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뜻에서 ‘무학’이라고도 하고 진리에 도달했다는 뜻에서 ‘응진’이라고도 하는 것인데,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불자들의 목표가 무수한 생을 거듭해서라도 보살도를 완성하여 스스로 부처님이 되는데 있었으므로 아라한은 소승의 수행자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역대로 이와 같은 아라한은 무수히 배출되었지만,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직제자 가운데 정법을 지키기로 맹세한 16나한을 모시거나 특별히 석가모니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부처님 생전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편집하기 위한 모임인 경전결집에 참여했던 500나한을 모시고 있다.
보통 16나한을 모시지만 간혹 18나한을 모시기도 한다.
16나한의 이름
①빈도라발라사 ②가낙가벌차 ③가낙가발리타사 ④소빈타
⑤낙거라 ⑥발타라 ⑦가리가 ⑧벌사라불다라
⑨술박가 ⑩반탁가 ⑪라호라 ⑫나가서가
⑬인게타 ⑭벌나파사 ⑮아시다 16주다반탁가
한편 나한은 부처님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미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성자이므로 초자연적인 신통력과 더불어 독특한 표정과 자유스러운 자세를 갖고 있다. 또한 나한은 미래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부처님의 수기를 받은 분들이다. 따라서 민간신앙에서는 나한에 대한 무수한 설화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서민들의 기복신앙으로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성보문화재
보문사가 관음 도량의 성지임을 가장 잘 상징하는 성보문화재로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멀리 서해바다가 한 눈에 조망되는 등 경치가 장관이다. 특히 낙조(落照) 경관은 아주 일품이어서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해와 노을을 쳐다보노라면 종종 그야말로 무아지경 불심(佛心)의 경지에 들곤 한다.
이 관음좌상은 대웅전과 관음전 사이에 있는 계단을 따라 한 10분 가량 올라가면 나오는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에 새겨져 있다. 절에서부터의 거리는 약 1km가량 된다.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기 때문에 계단은 지그재그 식으로 놓았다. 이 불사를 기념하는 `관음성전계단불사공덕비'가 중간에 놓여 있다. 계단이 놓여졌다고는 하나 눈썹바위로 올라가는 길 자체가 워낙 급한 까닭에 한달음에 올라갈거리는 못된다. 가다 보면 제법 다리에 힘도 들고 허리가 뻣뻣해지기도 한다. 이럴 때 `관세음보살'을 마음속으로, 혹은 나지막이 외우며 올라가노라면 문득 어느새 관음보살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배선주 주지스님이 보문사가 관음 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이화응(李華應)스님과 더불어 이곳에 새긴 것으로, 크기는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하는 거상(巨像)이다.
크기를 척수로 환산하면 높이 32척에 너비가 11척이 되는데, 이것은 곧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관음 좌상 약간 비스듬히 나 있는 바위면에 새겨졌는데, 위의 바위가 마치 지붕처럼 돌출되어 있어 비바람으로부터 관음부처님을 가려 주고 있다.
관음 좌상의 양식을 보면,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정성스레 정병(淨甁)을 받쳐든 채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얼굴에 비해 다소 크게 느껴지는 코 입 귀는 투박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서민적이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푸근해지 며 정감이 간다. 또 부처님 얼굴에 빠짐없이 있기 마련인 백호(白毫)도 이마 사이에 솟아 있다.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불의(佛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싸도록 입는 통견(通肩)을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연화대좌 왼편, 그러니까 관음을 바라보아 오른쪽에는 `조불화응선사(造佛華應禪師)'가 그리고 그 반대편 위패 모양으로 새긴 구획 안에도 `화엄회상필부사왕중(華嚴會上八部四王衆)·나무화엄회상욕색제천중(南無華嚴會上欲色諸天衆)·화엄회상호법선신중(華嚴會上護法善神衆)' 등의 글씨가 세 줄로 새겨져 있다.
이 관음상은 비록 작품이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이 관음 도량의 성지인 동시에 기도(祈禱) 성지임을 나타내는 상징성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이곳에서 정성으로 기도 드리면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없다 하여 지금도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
 
책장의 일종으로 불교에서는 경전을 넣은 책장을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윤장 또는 전륜장(轉輪藏)·전륜경장(轉輪經藏)이라고도 한다.
중심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에 의지하여 원형 또는 다각형의 나무장을 올린 뒤 여기에 경전을 넣고 손잡이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다.
경전은 경장뿐 아니라 율(律)과 논(論), 여러 고승들의 장소(章疏)도 함께 넣어 둔다.
 

1300년 고찰의 보타 낙가산 관음성지, 나한도량 보문사를 성지순례하시고 싶으신 사찰이나 단체는 사전에 연락을 주시면 사중에서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입장료 안내

__일반인 2,000원
__청소년: 1,500원
__어린이(초등학생): 1000원

◆ 단체: 30명이상일경우 20% 할인이 적용됩니다.

사전에 필히 성지순례 일정, 성지순례 인원등 관련된 사항을 종무소로 연락을 주십시요.
전화: 032) 933-8271~3, 팩스: 032) 933-8270
E-Mail: bomunsa@bomuns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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