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중탱화(神衆幀畵)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신중을 그린 것으로, 조선 후기에 가장 대중적으로 유행했던 불화이다. 신중은 석가모니불 이전부터 인도에서 신앙되었던 토속신들로서 부처님의 자비심에 감동되어 불교에 귀의한 후 불법(佛法)의 유통과 옹호를 맹세한 성중(聖衆)으로 불교 성립 초기에는 부처님과 경전, 그리고 그 법을 설하는 법사를 보호하는 호법신(護法神)의 역할을 하였다. 불법이 크게 전파되고 이들 호법신들의 역할이 점차 커지면서 국가를 수호하거나 사람들의 재앙을 소멸시켜주는 측면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금선사 신중탱화는 광서 13년인 1887년에 제작된 것으로 인법당에 모셔오던 것이다. 비교적 화기(畵記)의 내용이 선명하게 남아있어, 북한산 지역의 불화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생각된다. 화기에 신중탱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초 부터인데, 금선사에 봉안된 신중탱화에서도 ‘신중탱’의 명칭이 표현되어 있다. 금선사 신중탱화의 전체적인 색조는 붉은 계통이고, 도상은 단순하다. 현재는 표구된 상태로 보관해오고 있다. 금선사의 신중탱은 상단에는 제석천이, 하단에는 위태천이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제석이 위치한 천부(天部)가 축소되고, 하단에 위태천이 중앙에 모셔져 강조되고 있다. 또한 주목되는 점은 위태천을 중심으로 한 천룡부에서 팔부중 이외에 산신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신중탱에서는 일반적으로 산신과 조왕신이 짝을 이루어 묘사되지만, 금선사 신중탱에서는 산신과 호법신장이 짝을 이루고 있다. 산신과 조왕신과 같은 토속신의 등장은 19세기 이후에 보이는 특징이다. 이것은 신중신앙이 대중화되면서 민간신앙이 신중신앙과 결합한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18세기에 보였던 천룡탱화(天龍幀畵)와는 달리 팔부중 대신 이들 토속신이 위태천(=천룡)의 협시로 등장하는 것은 민간신앙이 조선후기 불교에 수용되어 점차 중용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신중탱화의 도상 역시 변모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금선사 신중탱은 이러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방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