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우연한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에게,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자만과 교만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후회와 분노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혹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너무나 간절히 깨닫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게 어떤 말 한마디는 순간적으로 생각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 생각의 흐름이 바뀌면 죽고 싶다던 사람이 죽음을 포기하게 되고, 자만에 빠진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며, 분노가 용서로, 후회가 용기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기도 한다. 최근 나에게는 나의 생각을, 나의 삶을 바꾸어 주었던 한 마디의 말이 있었다. 법정 스님에 관한 다큐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우연하게 ‘꽃은 우연히 피지 않습니다.’라는 멘트를 듣게 되었다.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아주 오래 동안 풀리지 않았던 나의 가장 중요한 고민이 불 빛에 순간 어둠이 사라지는 것처럼 해결되었다.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은 우연이지만 그런 변화가 일어나기 까지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변화의 원인들이 쌓이고 쌓여 변화를 잉태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을 것이다.
‘꽃은 우연히 피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는 그냥 누구나 다 아는 그런 내용인 것 같지만 누구나 모르고 사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이 문구 뿐만 아니라 세상의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던 나에게는 순간의 짧은 이 말 한 마디가 깨달음의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하였다. 꽃은 우연히 피지 않는다. 한 송이의 꽃이 피기 위해서는 그 꽃이 피기 위한 수 많은 원인과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반대로 그 조건과 원인이 갖추어 지지 않는 다면 꽃은 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꽃만 그러 할 것인가? 세상의 다른 모든 존재들은 어떤 원리로 존재하고 있을까? 세상의 다른 모든 존재들 또한 우연히 핀 꽃들이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은 존재하기 위한 필연의 조건과 원인들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존재하게 하는 조건과 원인이 갖추어 지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우리에게는 존재해 주기를 바라는 것들이 있고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이 있다. 행복하기를 바라고, 오래 살기를 바라고, 건강하기를 바라고, 부자가 되는 것 등을 바란다. 반대로 괴롭지 않기를 바라고, 병이 없어 지기를 바라고, 빈곤과 무지 등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들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보면 괴롭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무엇이 되었건 존재하기를 바란다면 존재하게 하는 원인과 조건을 갖추면 되고 반대로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원인과 조건을 만들지 않으면 될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적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사실이 있다. ‘괴롭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길...’ 만약 앞의 상식적인 원칙을 적용해 본다면 괴롭지 않기 위해서는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지 않으면 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행복을 가져오는 원인을 만들면 될 것이다. 여기서 괴롭지 않는 것과 행복하다라는 것은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같은 말이다. 괴롭지 않을 수록 행복의 순간은 늘어갈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 가지만 신경 쓰면 된다. 바로 괴롭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괴롭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노력들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답은 괴롭게 할 원인을 만들지 않거나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도 알고 보면 대단한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하여 괴롭지 않고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괴로움의 증상을 없애가며 행복하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괴로움이라는 것은 어떤 원인과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이며 증상이다. 그 증상은 원인을 해결할 때 근원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단순히 증상만 없애버리면 뿌리가 남아 있는 잡초처럼 또 다시 증상은 생겨날 것이다. 우리는 평소 괴로움의 증상에만 주의를 기울이지 그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심심한 느낌이 들었다고 하자. 심심하면 그 심심함을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거나 누구를 만날 것이다. 이것은 증상을 해결하는 것이다. 원인을 해결하는 방식이라면 심심함이라는 느낌이 왜 생겼는지를 알고 그 느낌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일 것이다. 같은 현상이지만 해결 방식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다른 모든 현상들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 괴로움의 증상을 해소해가면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원하는 것을 얻고, 하고 싶을 것을 하고, 이루고 싶을 것을 이루며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괴로움의 증상을 없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꽃은 우연히 피지 않는다.’라는 짧은 말 한 마디는 나에게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행복을 구하고 있는지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눈을 가져다 주었다. 없던 사실이 아니라 단지 나 자신이 모르고 있던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괴로움의 원인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귀결되게 되었다. 그러려면 우선 제거해야 할 괴로움의 원인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뭐가 되었든 결국 마지막에는 항상 ‘집착’이라는 놈이 주범으로 밝혀진다. 이제 내가 상대하고 처리해야 할 대상이 분명해졌다. 전쟁이나 스포츠에서도 적을 아는 것은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다.
‘꽃은 우연히 피지 않는다.’라는 말은 그 짧은 한 마디에 문제와 문제의 원인과 문제를 해결하는 원리가 다 들어 있다. 그래서 정말로 나의 삶을 바꾸어 주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꽃이 우연히 피지 않듯 보이는 모든 것들이, 들리는 모든 것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결코 우연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 사실을 토대로 생각하고, 그 사실을 토대로 다시 세상을 바라 보자 집착은 아주 조금씩 줄어가고 있었다.
짧은 말 한 마디가 결국 이렇게 해서 나의 삶이 되었고 나의 수행이 되었고 다시 나의 미래가 되었다. 살다보면 우연을 가장하여 필연의 결과가 찾아온다. 필연의 원인들이 우연이라는 증상으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꽃은 우연히 피지 않는다.’ 지금 마시는 차 한 잔에서 다시 그 맛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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